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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Feb 05. 2023

내게 고인 것들로 쓰는 이야기

[독서노트] «책과 우연들» 김초엽



좋아하는 작가의 '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책의 목차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집어 든 책이다. 김초엽 작가가 낸 책은 모조리 읽어버릴 작정으로.


내가 생각하는 김초엽은 문장에 정보량을 많이 담는 작가다. 언어의 연금술사 또는 문장 깎는 장인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하필이면 동시에 펼쳐놓고 읽은 책이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었던지라, 두 작가의 서로 다른 호흡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감성이 깃들었다거나 세밀하게 조탁한 문장이 아닌 말 그대로 그 안에 정보량을 그대로 담고 있는 문장들이 대부분이고, 소설을 읽을 때에 전자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이 작가의 팬이 된 것이 좀 별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김초엽에게서 찾은 장점은 '소재'다. 다른 SF소설과 비슷한 주제를 다룰 때에도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소재와 흐름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같은 목표지에 도달한다 해도 그 과정이 새롭고 즐거우니 더욱 주목하게 된다. 끝이 정해진 소설을 읽는 것의 의미와 재미 또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김초엽 소설의 소재의 원천이 어디 있는지가 자주 궁금했다. «책과 우연들»에서 그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었고.


요약하자면 김초엽의 아이디어는 타고난, 신이 내린 그것이라기보다는 수없이 읽어 갔던 이전의 텍스트들로부터 유래한다. 그것이 합쳐지고 해체되고 재구성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이전 소설과는 다른 어떤 하나의 포인트가 자신의 소설을 완성한다고 했다. SF소설의 독서 경험이 짧은지라 김초엽이 보여주는 세계가 굉장한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다고 느껴왔으나, 그의 소설들 또한 앞선 작가들의 덕을 어느 정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솔직함이 좋았고 앞으로의 나의 글쓰기에도 큰 동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작품의 아이디어가 그것 자체로 엄청나게 새롭거나 놀랍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는 엄청난 상상력에 감탄하는 대신 작가가 이전의 것에 무엇을 새롭게 더했고 어떤 부분을 자기 방식대로 변주했는지에 주목하게 된다. (…) 창작자로서는 작품의 맥락을 아는 쪽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새롭다고 착각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알고 있어야 약간이라도 다른 것, 조금이나마 새로운 것을 쓸 수 있으니까. 
                                                                                             - 김초엽, 책과 우연들, 200쪽


그동안 내게 책을 읽는 행위의 가장 큰 목적은 '재미'에 있었다. 백색 소음에 집착하는 사람인지라 한동안은 TV에게 그 역할을 맡겼었고 집에 TV를 없애면서부터는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했었다. 사실 스마트폰은 백색 소음 제공 장치를 넘어 정신 스틸러의 역할까지 했었는데 독서에 다시 몰입하면서는 적당히 균형을 이루게 됐다. 스마트폰에 대적하려면 그만큼의 재미가 있어야 하기에 책은 재미있게 읽는 것이어야 했고 그래서 내게 그런 효용이 있는 '소설'이 여전히 좋다. 책을 읽은 후 감상을 가다듬거나 필사를 하는 과정은 그다지 요긴한 관련 활동은 아니었다. 거쳐 온 시간을 남기고 싶어 서평을 쓰기 시작한 지 꽤 되었으나 필사만은 '재미를 위한 독서였을 뿐인데 이게 왜 필요하지'하는 생각으로 뒷전에 두었고 그러다 보니 휘발되는 양이 꽤 많았고 잡담이나 일기에 가까운 독후 감상만을 쓸 뿐이었다.


«책과 우연들»을 읽으며 수많은 독서 경험이 '고이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독서 행위를 있는 그대로 말하기 힘들어 그 목적이 재미에만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왔던 건 아닌지. 그렇게 읽어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 내게 재미는 당연한 목적이기에 그다음 하나를 더 얻고 싶어졌다. 책은 파헤칠수록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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