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지유 Apr 28. 2021

주입식 사고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미대생활, 절망의 졸전과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

필자에게 있어 미대 3학년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한 해였다.


2년 동안 익힌 기술들로 표현하는 법은 늘었고, 생각없이 손만 움직이는 작업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우쳤으며, 해보고 싶은 작업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학 3년차에 접어들면서 해외생활로 인한 피로가 심해지면서, 항상 생각하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 미대생 특유의 정신적 피로까지 겹치면서 여러모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이면 늘 챙겨주던 선배 언니들은 모두 졸업해 귀국했고, 창작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끙끙 앓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사실 털어놓을 생각도 잘 하지 않는다) 저절로 집에만 있다보니 동기들과 어울리는 일도 적어지고, 친구들로부터 "요즘 너 너무 못 본다"는 말도 들었다. 이럴 때 보통 가족에게 의지하는 게 보통이겠지만 필자의 경우, 미대 진학을 말리지는 않았지만 딱히 엄청나게 반기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전혀 미술에 조예가 없었던지라, 필자가 작업이 풀리지 않거나 창작적인 고민이 있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도 서운했던지라, 괜히 답답해하다가 화를 낼까봐 부모님과의 통화를 피하기도 했다.


어찌 됐건 작년의 슬럼프를 지나 이렇게 수없이 복잡한 것들을 끌어안고 3학년으로 진급하니, 대망의 졸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미대에는 학사에 해당되는 3학년에 한번, 그리고 석사에 해당되는 5학년에 한번 졸업전시를 치룬다. 3학년에는 1년 동안의 성적표와 학년말에 이루어지는 개인 작업 전시회로 평가를 받는다. 이 개인 작업 전시회의 평가에는 담당 교수를 포함해 외부에서 초청되는 교수들이 참여하게 된다. 전시회를 꾸리기 위해서는 우선 첫번째로 개인 주제 결정, 두번째로 교수와 상의해 컨펌받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업 만들기. 이 세 단계를 거치며 어느 한 공간을 채울 만큼의 작업량을 뽑아내야 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있어 이게 어느 정도의 작업량인지, 최대한 열심히 설명해보겠다.


우선 졸전=1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라고 치자. (실제로는 약 7-8개월) 첫번째, 주제를 정해보자. 내가 평소에 흥미있어했던 것이면 가장 좋다. 주제를 정했으면 두번째, 이 주제 안에서 내가 던질 수 있는 물음, 즉 "Problématique"를 찾아야 한다. (무엇이든 다시 보고, 질문하고, 토론 주제로 삼는 프랑스식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예상한다. 모든 형태의 프랑스식 에세이와 논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세번째,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작업을 시작한다. 완성된 모든 작업들을 모아 전시회로 꾸밈으로서 해답을 낸다.


필자는 만화와 애니로 그림을 배웠고 유일한 관심사 또한 만화였기에, 자연스럽게도 그림체는 만화스러웠다. 하지만 순수미술 공부를 하면서 그림체와 쓰이는 재료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실제 네컷이나 여덟컷짜리 만화를 그리는 게 아니라, 만화적인 그림체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재료로 실험해봤다. 판화, 아크릴, 잉크, 등등... 그 실험이 재미있었고, 만화와 만화적인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는 교수의 말에 발끈한 것도 있어, 주제를 "일본 만화와 순수미술의 교집합"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 주제 안에서  "일본 만화와 순수미술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를 묻는다면 단연,


"내가 정한 주제 안에서,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


이 질문을 찾는 과정이 필자를 가장 많이 괴롭혔다. 하고 싶은 주제를 찾는 데에 한달, 그놈의 "질문"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에 한달, 찾는 데에 또 한달. 아무리 외국 생활을 오래 했어도 정서는 한없이 토종에 가까웠기에 늘 "시키는 대로", "공부해야 해서" 공부했다. 이제 겨우 스무살을 넘긴 나이에, 갑자기 "네 마음대로 원하는 주제를 골라, 네 스스로 질문하고 싶은 걸 꺼내 예술로 풀어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패닉에 빠졌다.


결과 실제 작업을 한 기간은 불과 3-4개월. 번개치기도 이런 번개치기가 없달까. 그조차도 내 스스로 정한 주제 안에서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도대체 무엇을 만들어야 주제에 맞는지, 어떻게 작업으로 내 생각을 표현할지, 어떻게 보는 사람을 설득할지, 작은 전시회를 하려면 작업을 몇개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내 주제에 대한 질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완전히 백지상태로 길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받기는 힘들었다. 3학년 담당 교수와는 면담할 기회가 적어 자주 보지도 못했고 줄곧 "그래, 해 봐라"라는 식으로 격려 아닌 격려를 받았다. 실제로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던 교수는 설치 과목 담당 교수로, 늘 핵심적인 부분들을 지적해주었고 또 도움이 많이 되는 조언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하는 내내 의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주제에 맞게끔 작업을 만들고 있는지, 작업을 보면 의도를 알 수 있게끔 하고 있는지...


이윽고 대망의 졸업 전시 D-Day. 막연했던 불안감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1년 내내 지켜봐왔을 담당 교수로부터는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네가 뭘 하고 싶은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는 혹평을 받았다. 초청된 외부 교수진은 "하고 싶은 말은 알겠지만 약하다", "의도는 알겠으나 작업에 보이지 않는다" 라는 피드백을 주었다. 결과, 동기들 중 유일하게 졸업시험에서 떨어진 낙오생이 되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의 미술 평가제도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