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도 몰랐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는 미술학교의 평가
학교생활은 그 나름대로 즐거운 것이었지만, 학업적인 면을 생각하면 할수록 미대라는 건 은근히 골 때리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이라는 것은 너무도 주관적인 것이고 사람마다 각자 의미가 다르다. 그걸 어떻게 교육시키고 육성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신입생 때는 마냥 해메던 병아리 군단을 지도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술에는 유화도 있고 드로잉도 있고 판화도 있고 목공도 있고 등등...이런 장르, 저런 장르가 있다는 입문 가이드와 함께 약간의 맛보기를 해주는 식이었다. 신입생으로서는 최대한 많은 걸 경험해보고 개중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을 찾기까지의 여정이라고 보면 되겠다. 2학년이 되자 겨우 병아리 이름표를 뗀 학생들은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어쩌면 과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에는 3가지 과가 있었는데, arts (예술), design graphique(그래픽 디자인), design textile (직물 디자인: 패턴과 천의 종류를 다루는 디자인) 이었다. 우리 학교는 직물로 유명한 지역에 위치한 학교로서 당연히 직물 디자인 전공자가 가장 많았고, 그림밖에 몰랐던 나는 당연히 예술과로 갔다. 굳이 그림이 아니더라도, 그래픽과 직물 디자인 전공이 아닌 동기들은 모두 나와 같은 과를 선택했다.
2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교수들이 학생의 작업 자유도를 존중해주었다. (좋게 말해 존중이지 나쁘게 말하면 방임) 각자 원하는 재료, 원하는 테마를 잡아 개인이 원하는 작업을 권했으며 시간표도 조금 느슨해졌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강의 듣다가 난데없이 "알아서 해라"하고 내던져지니, 다들 어쩔 줄을 몰랐다. 뭘 해야 하지? 난 뭘 잘하지? 내가 하고 싶은 주제는 뭐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자연스레 1학기는 나태한 혼란 속에 흘러갔고, 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동기들이 슬럼프에 빠졌다. 대망의 학기말고사 (프랑스에서는 bilan, 중간점검이라고도 한다) 에는 다같이 혼이 났다. "지금까지 한 학기 동안 대체 뭘 한 거냐"라고. 뒷통수를 거하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다같이 배신당한 기분으로 어째저째, 꾸역꾸역, 2학년도 넘어가는 듯 싶었다.
그 때서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무언가를 형태로 만들어내야만 하는 입장으로서 "원하는 주제"를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며, 원하는 주제를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윽고 3학년이 되었을 때는 학년 말에 다가오는 졸전, 졸업전시와 개인 작업, 그리고 졸업장의 존재가 슬슬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수업은 더욱 늘어지면서 학생들 각자 개인의 작업 시간을 만들어주었고, 학교가 아니라 집에서 작업하는 동기들도 생기면서 학교는 점점 비어갔다. 유독 기억에 남는 "Accrochage" (설치)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돌아가며 특정한 장소에서 작품을 설치한 뒤 동기들과 교수님께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트레이닝이 되어주었던 과목이지 싶다. 단순히 머리와 손을 굴려서 작품을 만들어도 이것을 벽에다 걸어놓는 것은 별개의 일이며, 더욱이 남에게 이걸 발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작품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즉, 내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어 만든 나의 결과물을 세상에 선보이고 평가를 받음으로서 소통하는 것.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한다는 것이 바로 이 뜻이었다. 예술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햇병아리 3년차 미대생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그대로 졸전에도 드러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