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이었다. 오랫동안 짝사랑 해오던 그 아이에게 고백을 받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때는.
5학년, 열두 살의 나에게 사춘기가 온 것이었을까? 바닷가마을 작은 국민학교,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시골에 사는 애 답지 않게 하얀 얼굴과 곱고 긴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한창 장난치기 좋아하는 시꺼먼 개구쟁이들과는 달리 여자애들을 놀리거나 못살게 구는 일도 하지 않았다. 가끔 눈이 마주쳤지만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은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할까 싶어 관심 없는 척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마음의 말을 쉬이 꺼내 놓질 못했다. 우연히 그 아이가 내 옆을 지나갈 때면 두근거림을 감추느라 애써야 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서 혼자 설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 후 그 아이는 시골 중학교를 떠나 서울로 전학을 가버렸다.
방학이면 시골집에 오는 것 같았지만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서울에 살면서 더 새하애진 그 아이의 얼굴에 비하면 새까만 촌스러운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만날 일 자체를 만들지도 않았다. 짝사랑의 좋은 점은 상처받을 일이 크게 없는 것이었다. 국민학교 동창인데도 서로 말을 거의 안 했던 터라 잘 가라는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했지만 많이 슬프지는 않았다.
집을 떠나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명절마다 내려간 고향에서 친구들이 국민학교 동창회에 나오라고 몇 차례 연락을 해왔다. 그 아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참석했지만 그 아이가 보일 때도, 아닐 때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 나누면서도 그 아이에게는 왠지 말을 건네기가 부끄러워 여전히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런 관계로 끝나나 보다 싶었다. 보름달이 환히 비추던 열아홉의 추석날 밤, 그 아이가 나를 불러 세우기 전까지는.
“잠깐 할 말이 있는데..”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가을바람이 시원한 부둣가로 나를 데려가 앉히고는 한참을 서성거리는 그 애를 보면서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것을 예감했다. ”쿵쾅쿵쾅 쿵쾅 “ 내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심장소리가 그 아이에게 들릴까 봐 신경이 쓰여 조신히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재촉했다. “왜~? 무슨 일인데?”
맙소사! 정말로 나를 좋아한다며(심지어 오래전부터) “우리 사귈까?” 한다. ”그럴까? 나도 너 좋아했는데! “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 고백을 시작으로 우리는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는 서울에서, 나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원거리 연애는 내 마음을 더 애끓게 만들었다. 그 아이는 손 편지를 보내왔고 밤마다 전화해 보고 싶다고 속삭였다. 처음 찾아온 사랑으로 부풀 대로 부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그 아이로 가득 찬 속마음을 전하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전부 다 던져버리는 성격인지라 고3 생활이 엉망이 될 것 같아 참고 참았다. 대신 ”내가 꼭 너한테 갈게. “라는 다짐을 기도처럼 말해주었다. 몇 년 만에 응답받은 내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서울로 가야 했다.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목표가 생겼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했고 결국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다. 내 유일한 목표는 대학이 아니라 그 아이와 늘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수능을 치르고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나를 반기는 그 아이의 미소가 좋았다. 내 손을 꼭 잡아주는 그 아이의 손이 좋았다. 서울 구경시켜준다며 지하철 타는 법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그 아이와 함께 숨 쉬고 있는 모든 순간이 견딜 수 없이 좋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진학할 대학이 정해진 나와는 달리 그 아이는 재수를 결정했다. 워낙 공부를 하지 않았던 애라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지만 여자친구로서 응원은 당연한 일이었다. 2월, 스무 살이 되던 내 생일날. 그 아이는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어느 날보다 예쁜 모습으로 날 찾아왔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축하를 건네는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을 마음속에 가득 채우던 그 순간, 그 아이가 이별을 고했다. 기숙하는 재수학원에 가기로 했다며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했다. 대학생인 내 옆에서 초라해질 자신이 싫어 더 이상 나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울고 불고 매달렸지만(왜 그랬는지..) 이미 마음을 굳힌 듯 완고했다. 내 대학생활의 시작은 이별의 상처로 엉망진창이었고 사춘기 때에도 하지 않았던 방황이 시작되었다.
만나는 날이면 내내 내 손을 잡고 있던 그 아이 손은 따뜻하다기보다 뜨거웠다. 그 아이의 사랑을 받고 있음이 느껴져 그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겨울의 추위를 녹여주던 뜨거운 손은 공부하느라 홀로 밤을 지새웠던 내 외로운 날들의 보상이었다. 나를 귀하게 대해주는 그 아이가 나를 떠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이제 막 눈 뜬 사랑에 취해 내 마음이 더해지는 시간에 그 아이의 마음은 덜어내지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느꼈던 뜨거운 손은 아마도 내 사랑의 온도였는지 모르겠다.
가끔 그 아이 생각을 한다. 아니, 그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을 생각을 한다. 스무 살 청춘의 사랑은 뜨거웠고 이별의 상처는 깊었다. 하지만 그 사랑으로 나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사람을 사랑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서툴었던 시간 위로 내 삶이 수북이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