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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정 Nov 12. 2024

붕어빵 좀, 팔아보았습니다

집 앞에 붕어빵 가게가 생겼다. 가게라기보다는 공터에 붕어빵 리어카를 놓은 노점이 하나 생긴 것이다. 빵을 좋아하는 아이가 그 앞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이모 집에 갈 때만 먹을 수 있었던 붕어빵을 이제 집 앞에서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아이는 누구보다 붕어빵 노점을 반겼다. 2천 원에 3개 하는 붕어빵을 사들고 엄마와 아빠를 쳐다본다. 하나만 먹기에는 아쉽다는 눈빛이다. “엄마는 안 먹어도 돼. 엄마는 붕어빵 장사할 때 많이 먹어서 이제 질렸어.”하자 아이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진다. “엄마 붕어빵 장사했어?” “응, 엄마 멋지지?” “우와” 아이는 입까지 벌리며 다물지를 못한다.


서른 즈음에 찾아온 방황기에 나는 느닷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계속 이 일을 하는 것이 진절머리가 나서 충동적으로 때려치웠다. 계획 없는 일을 저지르고는 주위의 걱정은 나몰라 하며 날마다 빈둥거리고 있었다. 5년 넘게 열심히 일했으니 이 정도 휴식은 필수라며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안을 잠재우고 있을 때, 사는 곳이 가까워 친하게 지내던 전 직장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도 마침 놀고 있는데 붕어빵 장사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붕어빵? 웬 붕어빵 하면서도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동료와의 만남을 가졌다. 동료는 나름 알아본 정보를 나에게 풀어냈다. 이게 잘만 하면 한철 꽤 쏠쏠하게 벌 수 있다는 유혹적인 말과 함께 시큰둥한 나를 꼬드겼다. 언제까지 월급 받아 살 거냐며 서른 넘어 우리도 뭔가를 시도할 때가 왔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이었다. 딱 붕어빵이 생각나는 계절이 그녀의 말과 함께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골목 어느쯤에 위치한 길거리에도 세를 내야 한다는 생소한 것들을 알아가며 장사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붕어빵 사장님이 되었다. 붕어빵 장사를 위한 세팅은 쉬웠다. 시스템이 다 마련되어 있는지라 노점상을 위한 카페에 가입하고 맛있다고 소문난 붕어빵 업체 사장님께 연락하면 리어카에서 붕어빵 틀을 내가 세를 얻은 장소로 가져와 설치를 해주신다. 날마다 반죽이며, 붕어빵 안에 들어갈 소까지 시간 맞춰 배달이 되어 왔다. 그 사장님 말로는 유동인구가 좀 있으니 장사가 잘 될 것 같다고 하셨다. 부푼 마음을 안고 간판 없는 내 첫 사업체를 개업 했다. 이제 붕어빵을 잘 만들어 팔면서 쏠쏠하게 돈을 버는 일만 남았다.


빵이라고는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우리의 붕어빵은 형편없었다. 불조절에 실패하고 시간조절에 실패한 시커먼 붕어빵들이 줄줄이 나왔다. 줄줄이 나오는 실패작들 중 나은 것들을 나눠주다시피 하면서 첫날의 장사를 후회 속에 끝냈다. 그래도 무엇이든 하면 는다고 날이 지날수록 붕어빵이 제법 모양을 갖추었고 하굣길의 아이들이 천 원씩, 이천 원씩 팔아주니 장사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자신감이 붙자 어묵꼬치까지 도전하게 되었다. 최고의 국물을 선보이기 위해 식자재마트를 다니며 육수에 신경을 쓰니 붕어빵도 어묵도 오가며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짧은 기간 동안 단골이 생기니 신이 났다.


하지만, 붕어빵 장사는 두 달을 채 못하고 접었다. 붕어빵이고 어묵이고 맛만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경험도 없고 치밀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는 재고관리에 엉망이었다. 장사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초보장사꾼들은 좀 팔리기 시작하자 흥분해서 재료 주문량을 확 올렸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노점의 특징도 알지 못했던 지라 추운 날 한껏 만들어 놓은 붕어빵이 식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봐야만 했다. 추운 겨울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느라 감기는 떨어지지 않았고 무거운 짐들을 자꾸 드니 허리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 의사는 쉬어야 한다고 강력히 당부하였다. 가스비나 다른 기타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 앞으로 벌고 뒤로는 밑진다는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달간의 장사꾼이 되어보니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억척에는 삶을 똑바로 마주하는 용감무쌍함이 진하게 배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련 없이 장사를 접고, 용감하지 못했던 우리는 소주 한잔으로 허한 가슴을 채우며 다신 장사는 하지 말자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다. 우리가 떠난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붕어빵을 판다고 했다. 장사가 너무 잘돼서 눈코 뜰 새 없더라는 말도 전해 들었다. 배가 아프지 않았다. 마음 깊이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그 일을 해내기 위해 뒤에서 하는 노력들이 얼마나 치열할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고 다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고 쳇바퀴 돌아가는 세상으로 다시 몸을 담았다.


그렇다 할지라도 방황이 시작되는 어느 날, 나는 또다시 붕어빵을 팔러 길거리로 나설지 모르겠다. 붕어빵을 팔아본 경험은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좋은 교훈이 되어 주었다. 이 자그마한 교훈은 언제라도 가장 큰 힘이 되어, 나를 용감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때는 길거리의 추위도 두렵지 않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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