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온도
우리 엄마는 자식의 단점을 보는 데 선수다. “엄마! 나는 돈 버는 게 재밌어. 돈 많이 벌어서 집안일 안 하고 살 거야. 집안일해주는 사람한테 돈 주고 맡길 거야.” 다시 돈 버는 일이 흥이 난 나는 엄마와 마트를 가면서 희망사항을 말하고 있었다. 집안일하기를 유독 싫어하는 막내딸을 엄마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 늦었어. 니 나이가 몇인데 어느 세월에 그 돈을 벌겄냐?” 늘 그렇듯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뭐가 늦어? 엄마 나 지금부터 시작이야. 할 수 있어!” 속상한 마음에 발악하듯 엄마에게 대꾸했다. 마흔 넘어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는 딸에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는 늘어가는 나이만 보이나 보다.
우리 엄마의 말의 온도는 늘 차갑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그 시대 청춘들은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학만 졸업하면 어엿한 직업을 갖고 여느 회사원처럼 무탈하게 살아야 갈 거라는 평범한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꿈은 꺾였고 당연히 올 거라 생각했던 미래는 흔적을 감췄다. 나태했던 대학생활 탓에 졸업 후에는 할 일이 없었다. IMF가 무엇인지 관심도 없는 엄마의 눈에 매번 취업에서 실패하는 딸은 반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때부터 엄마의 본전 레퍼토리가 시작되었다.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마나 많은데… 등록금에, 용돈에... 난 니가 뭔가는 될 줄 알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진학해 엄마를 자랑스럽게 했던 막내딸은 어느새 취직을 못하는 못난이 딸로 엄마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었다. 아쉬움을 넘치게 담은 엄마의 차가운 말은 계속되는 거절에 상처받은 내 심장에 소금을 뿌렸다. 인생 1막도 미처 마치지 못한, 고작 스물다섯밖에 안 된 나를 낙오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 차가운 말들은 살아가는 내내 가슴이 남았다.
어느 순간부터 기가 죽기 시작했다. 엄마의 말 때문인지, 내가 타고나기를 그런 건지 모르겠다. 겉으로는 그런지 않은 척했지만 안에서는 모든 일이 자신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어쩌다 들어간 작은 회사들은 폐업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결국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지지부진한 사회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었다.
정지아 단편소설 “말의 온도” 속 어머니는 늘 자식들을 하늘로 떠받칠 만큼 귀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식들의 대한 자부심이 드러난다. “니가 고로코롬 똑똑했당께. 그때부텀 나는 니가 크게 될 중 알았다. 장허다. 우리 딸. 참말로 장허다와.”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딸을, 스스로도 허망하기도 했다는 딸의 인생을 어머니는 장하다고, 참말로 장하다고, 연신 칭찬을 했다.
소설 속 어머니의 말이 부러워 책을 덮고도 한참을 책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 엄마의 말의 온도가 최고로 따뜻했던 날이 떠올랐다. 마흔 넘어 재취업은 쉽지가 않았다. 여전히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내 꿈을 무시하고 날고 싶은 내 발목을 잡아댔다. 계속되는 불합격 문자에 만신창이가 되었던 어느 날, 엄마의 안부전화를 받았다. 풀이 죽은 나에게 엄마는 “내 막내딸이 얼마나 일을 잘한디 누가 너를 탈락시킨대? 사람 볼 줄도 모르는 그런데는 쳐다보지도 말어라.” 하셨다. 엄마의 말에 도전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수많은 거절 끝에 딱 한 군데에서 합격 소식을 받은 날 제일 먼저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다. “잘했다! 잘했다 내 딸!”를 외치시던, 나보다 더 큰 기쁨으로 축하를 해주던 엄마를 잠시 잊고 있었다.
결국 내게 용기를 주었던 말은 “나는 니가 뭔가는 될 줄 알았다.”는 엄마의 말이었다. 나에게 상처였던 그 말이 담고 있는 것은 아쉬움이 아니라 기대였다는 것을, 따뜻한 말을 담는 방법을 모르는 엄마 나름의 응원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우리는 귀한 자식이다. 어린 딸을 품에 안고 좋아하는 나에게 엄마는 “이쁘지? 자식한테는 줘도 줘도 안 아깝단다.” 하셨다.
100세 시대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엄마의 차가운 말은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든다. “엄마, 내 인생 지금부터야!” 반도 넘게 남은 인생, 앞으로 배울 많은 것들과, 이루어 나갈 많은 꿈들로 벅차다. 이제야 크기 시작하는 나를 엄마가 오래오래 살면서 지켜볼 수 있어 다행이다. 엄마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뭔가 해내는” 막내딸, 그 모습을 보여줄 준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