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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재미 Oct 23. 2019

Z세대도 공무원이 되고 싶다

이들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노동시장, 긱 경제

우리는 일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일을 하면서 살면 좋을 텐데. 그렇다고 나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쉼 없이 달려온 탓에 몸과 마음이 지쳤고 휴식이 생각나는 것뿐이다. 어딘가로 이직하더라도 이 흐름은 다시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정규직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1. 프리랜서를 선언할 만한 전문성이 없고, 일정하지 않은 수입이 걱정된다.

2. 파트타이머로 살기에는 사회적 인정과 페이가 너무 적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형태의 노동시장에서 1번은 여전히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맞다. 하지만 2번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긱 경제(Gig Economy)에서 우리들 대다수는 파트타이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긱 경제란, 기업들이 정규직을 채용하는 대신에 필요할 때마다 근로자와 임시로 계약을 맺고 고용하는 경제 형태를 뜻한다. ‘긱’이란 용어는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 주변에서 하룻밤 계약으로 아티스트를 섭외해 공연에 투입한 데서 유래했다. 재즈클럽과 아티스트는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재즈클럽은 고정적으로 이들을 고용했을 때 드는 비용 부담을 줄이고, 아티스트는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긱’의 유래가 된 1920년대의 재즈 연주자들



맥킨지 컨설팅에서는 '긱'을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근로라고 정의한다. 이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기업은 우버(Uber)다. 우버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300만 명의 운전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드라이브 파트너’로 계약을 맺고 있다. 정해진 근로시간이 없으며, 근로자가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하면 된다. 최근에는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음식 배달, 세탁, 청소, 숙박 등 다양한 영역으로 이러한 고용 형태가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점차 유연해지는 노동시장과는 다르게 Z세대는 여전히 정규직을 선호한다. 저성장 시대에서 자란 탓에 미래를 보장하는 안정적인 근로형태를 원하는 것이다. 오히려 밀레니얼 세대보다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Z세대가 더 많아질 거라는 뜻이다.



현실적인 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더 정규직을 선호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파트타이머는 몸을 써서 일하고, 전문성이 크게 필요하지 않으며, 최저임금의 압박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감히’ 정규직을 그만두기가 무섭다. 파트타이머는 정말로 이래야만 할까? 이들이 머리를 써서 일하고, 전문성을 잃지 않으며, 높은 임금을 받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사무실에서는 파트타이머로 일하기 어려운 것일까?



몇 년 전에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서 엑셀로 데이터를 만지는 네덜란드 남성 파트타이머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적게 일한다고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질이 떨어지거나, 혹여 승진에서 누락될까 걱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일하는 시간을 조정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노동시장에서 파트타이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인기 있는 근로 형태다. 남성은 약 30%, 여성은 75%가 주 36시간 이하로 근무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정규직과 파트타이머 간의 차별을 엄격히 금지한다. 임금, 노동계약, 노동조건, 세금, 보너스, 사회보장 자격 등에서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특히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는 함께 육아를 하기 위해 파트타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아이의 모든 첫 순간을 놓치지 않아도 된다. 육아를 위해 커리어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 나는 긱 경제의 답이 네덜란드의 '파트타임 정규직'에 있다고 믿는다.



아네터 코닝씨는 15년째 일주일에 3일만 일하는 파트타임 근로자이지만 인사 책임자라는 고위직으로 승진했다



연구에 따르면 정규직 근로자와 파트타이머 간 생산성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네덜란드는 서비스업이 GDP의 70%를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OECD 제조업 비중 1위를 차지하는 한국의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파트타임이 보편화되면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산업구조를 소프트 파워 중심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정보과학, 문화예술 등 적게 일해도 고부가 가치를 낼 수 있는 산업군 말이다. 긍정적이게도 우리나라는 지금 이러한 방향성을 잘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사회보장제도를 잘 보완해서 사람들이 적게 일해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면 좋겠다.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나 하루에 6시간을 일한다. 오전에 3시간 일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 다시 3시간 일한다. 근무가 끝나면 문화센터에서 맞춤 강좌를 들으며 자기 계발을 한다. 겨우 이 정도가 유토피아라니. 아주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사실상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관점을 바꿔 유토피아에 가까워진 것을 기뻐해 본다. 그렇다,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이 맞다. 세상의 노고에 보답하고 긱 경제에서도 개인의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전문성을 갖출 것인가'를 고민해야만 한다. 유토피아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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