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무모한 선택이라 했고, 누군가는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했다. 대기업에서 5년 간 인사 담당자로 일하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우리는 행복하게 일할 수 없을까?" 나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일 하는 즐거움을 믿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지는 사실들은 그렇지 않았다. 직원들은 만성적인 피로감에 휩싸여 있었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원하면서도 새로운 인사제도가 한국의 실정에는 맞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유사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창의적인 근무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나는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인 산업군 중의 하나인 Creative and Cultural Industry에 집중했다. 해당 산업군에서 어떻게 조직을 관리하는지 배우면 행복하게 일 하는 방법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문화 경영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세계의 모든 나라를 후보에 올려두었다. 스웨덴은 내가 세운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유일한 나라였다.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스웨덴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다. 내가 살 두 번째 나라를 선정하는 기준은 이랬다.
1. 워킹맘으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곳
스웨덴에서는 보통 육아휴직 1년이 지나고 나면 유치원에 아이를 맡긴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도 육아를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2. 개인주의가 존중 받는 곳
스웨덴은 바이킹 문화에서 기반하여 평등한 개인주의를 추구한다. 바이킹 무리 안에서는 누구에게도 지배당하지 않고 누군가를 지배하지도 않는다.
3. 유학 비용이 합리적인 곳
스웨덴의 학비는 인문계 비유럽권 학생을 기준으로 2년에 3천만원 정도다. 억 단위의 학비가 필요한 영미권 국가와는 다르다. 스톡홀름의 집세는 비싸지만, 다른 지역은 크게 비싸지 않다. 장바구니 물가도 저렴한 편이다.
4.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취득하기 비교적 쉬운 곳
스웨덴에서 4년 간 고용된 사실이 있으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북유럽 국가 중에서는 이민자에게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2021년 7월 20일 부로 이민법 개정이 변경 되었다. 4년 간 고용된 사실이 있더라도 permanent 혹은 18개월 이상의 fixed-term contract 없이는 영주권 승인이 나지 않는 것으로 심사 기준이 이전보다 까다로워졌다.
하지만 내가 스웨덴을 선택하기까지 이성적인 요소들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5. 친구와 지인들이 많아 적응하기 좋은 곳
2년 전 여름, 오랜 친구가 스웨덴 사람과 결혼을 했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바다가 보이는 웨딩 베뉴에서 스피치를 했다.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시끌벅적한 파티장에서 잠깐 나왔을 때 나누게된 대화였다.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여성 분은 스웨덴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겨울은 어둡고 추워서 힘들다는 말을 덧붙이며 웃었다. 하지만 그 겨울을 견디면 천국 같은 여름이 온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파도 소리를 들었다.
스웨덴에서 무엇을 공부할지 전공을 고르면서 고민의 기로에 놓였다. 항상 마주해왔던 사회가 원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의 싸움이었다. 취업이 비교적 쉬운 학과를 골라야 할까? 아니면 공부하기에 즐거운 학과를 골라야 할까?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망설임은 몇날며칠 간 이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시작에는 새로운 마인드셋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제는 오직 나를 위한 것을 하자.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창작 활동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놓치 않은 것은 가사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자유롭게 나의 숨을 담아내는 과정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룬드대학교의 Creative and Cultural Management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석사 과정을 마칠 때 쯤 내가 얻기 바라는 것은 실질적인 무엇이라기보다 삶의 태도다. 큰 고민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뜻 선택하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앞으로 다가올 수 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나다움'을 찾아 나가는 스웨덴에서의 여정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