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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재미 Jul 24. 2019

[COPS] Pirate Spirit

착한 해적-Break Things and Benefit the World

아직도 ‘해적’하면 약탈자의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현대 사회,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이들은 능동적인 개척자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해적 깃발은 실리콘밸리의 핵심 정신으로서 성조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럼 해적 정신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위상을 얻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1. 1982년, 스티브 잡스가 맥킨토시 팀에게 “해군보다 해적이 되는 것이 낫다”라고 언급하다.





영화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에서는 개인용 PC를 만드는 과정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Bill Gates)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국민 정서를 고려하여) 영화의 제목이 <실리콘밸리의 신화>라고 번역되었다. 하지만 원작자가 이들을 ‘해적’이라고 이름 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사업 아이템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전설적인 창업자들은 서로의 좋은 아이디어들을 베끼는 데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아이디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한 아이디어들은 어떻게 하면 보완하여 대중에게 내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2011년 경,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위한 키노트에서 ‘copycat(모방자)’을 비난하며 그 해의 키워드로 회자되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현재 복제를 일삼는 애플의 경쟁업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는 얘기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 시절을 모른다는 말이 딱 맞다.




2. 1998년,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자신들이 해적 정신을 담은 버닝맨 페스티벌에 참가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렸다.

최초의 구글 두들, 버닝맨 페스티벌


구글 두들(Doodles)은 구글이 특별한 사건이나 기념일을 알리기 위해 만드는 일시적인 로고 디자인이다. 최초의 구글 두들은 히피와 해적 정신을 담은 버닝맨 페스티벌이다. 이로 인해 일반 대중에게 본 축제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버닝맨 페스티벌은 매년 8월 미국 네바다 주에서 열리는데, 사막 한가운데 가상의 도시인 '블랙 록 시티'가 일시적으로 형성된다. 이 도시가 사라지기 전날 밤에 모두가 모여 거대한 나무 인물상을 불태우면서 버닝맨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참가자들은 하나의 큰 도시, 작게는 직접 만든 예술 작품을 부수고 이동하며 자유롭게 자신들을 펼쳐 보인다. 아마존, 테슬라 등 실리콘밸리의 경영자들은 매년 이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영감을 얻어 간다고 한다.



(좌측) 버닝맨 페스티벌의 아름다운 구조물    (우측) 나와 친구들이 쌓은 괴상한 방식의 젠가



몇 년 전 버클리 대학교 근처의 보드게임 펍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 학생들은 마치 버닝맨 페스티벌에서 보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구조물을 ‘무려 젠가를 이용해’ 쌓아가고 있었다. 진지한 눈빛으로 협동하여 구조물을 완성시켜가던 그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범생이라고 놀렸던 점을 반성합니다) 버클리 학생들은 그저 예술 작품을 만들며 즐기고, 시간이 지나자 그것을 부수고 쿨하게 떠났다. 반면에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상대방을 최대한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괴상한 방법으로 블록을 쌓기에 바빴다. 그들과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며 배꼽 빠지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3.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의 모토는 ‘Move Fast and Break Things’의 해적 정신이다.



페이스북(Facebook)은 시장 변화에 맞추어 빠르게 움직이고, 기존의 것들을 파괴하는 혁신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며 누구보다 막강한 소셜 데이터를 갖게 되었고, 앞으로는 VR을 네트워킹 서비스에 적용하고자 한다. 해적 정신이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을 사로잡은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현대 사회의 글로벌 기업과 유사한 조직이다

모든 선원들이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동등한 투표권을 가졌다

혼자서는 지갑을 훔치는 데 그치지만, 함께 하면 거대한 상선을 훔칠 수 있다

부상을 입은 선원에게는 임금을 올려주거나 별도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40년이 넘도록 해군과 대적하는 독창적인 파괴자로서 이름을 떨쳤다


해적들은 민주적인 조직만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이는 큰 성공을 원하는 기업가들에게 필수적인 교훈이다. 우버(Uber)도 해적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운전자들과 맺는 계약조항은 ‘Pirate code’라고 불린다. 입법자들에게 허가를 구하지 않으며, 다른 경쟁 택시회사의 채용을 거부한다는 일종의 서약과도 같다. 이로써 우버의 기사들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도 회사에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우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현대카드의 슬로건 ‘break, make, break’이 해적 정신과 가깝다.





Prudent Games CEO이자 사이버 보안 전문가 REUBEN PAUL(6학년)은 일반 가정용품을 해킹하여 위험성을 경고한다. 해킹된 스마트폰이나 드론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당연하고,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음성 곰 인형 역시 도청장치로 쉽게 변할 수 있다. 루벤은 또래를 위한 사이버 보안 게임인 'Crack Me If You Can'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각종 NGO 활동 및 컨퍼런스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로부터 이미 잡 오퍼를 받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해적 정신은 변화한다. 1세대 해적 정신은 아이디어를 베끼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치열함을 보여주었다. 2세대 해적 정신은 Move Fast and Break Things라는 모토 아래,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민첩함과 혁신을 요구했다. 루벤은 이제 새롭게 변화한 3세대 해적 정신을 보여준다. 나는 이를 Break Things and Benefit the World의 '착한 해적 정신'이라고 정의한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Z세대가 무언가 파괴하는 이유는 혁신으로 사회를 이롭게 하기 위함이다. 앞으로 5G가 사람, 데이터, 사물을 모두 묶는 초연결사회에서 보안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루벤과 같이 사회를 이롭게 할 착한 해적들의 거친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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