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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sk Aug 22. 2024

아저씨 이런 데서 우시면 저도 울어요

14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승객은

      

"약 먹을 시간 지난 거 아냐?"     


이런 농담은 영영 하지 못하게 됐다.

약 먹을 시간 지난 비행을 한 후 부터다. 비엔나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본인 부부가 탔다. 희끗한 머리에 작고 마른 아저씨. 

여행에서 탄 건지 원래 그런건지 검게 그을려 있다. 얼굴 절반을 가리는 안경을 꼈다. 

조용하고 점잖아 보였다.

짧은 머리를 한 부인은 동글동글한 인상이다. 인상은 금세 바뀌었다. 

빨개진 얼굴로 날카롭게 여기 저기 화를 냈다.     


" 아나따, 난다요? (당신 뭐야?) "     


말리는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약 먹을 시간을 놓친 상황이다. 정신과 약을 깜빡하고 가방에 넣어 부쳤다 했다.

아파서 그러는 사람을 단호히 막으려니 맘이 좋지 않았다.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어 내 할 일을 계속했다. 

아저씨는 말리다 결국 그냥 옆자리에 앉았다. 막아도 소용없는 걸 알아서인지 민망함이 커서인지 땅만 보고 있었다. 일본에는 '메이와쿠(민폐)' 문화란 게 있을 만큼 남에게 폐 끼치는 걸 피한다 들었다.

크게 소리치는 아내의 입보다 조용히 떨궈진 아저씨 눈이 마음에 걸렸다.     



"캐빈 크루 도어 사이드 스탠바이, 세이프티 체크"*     

(승무원 문 옆에 대기하세요, 안전 확인하세요.)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 방송이 나온다.

열 시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부부는 앞 쪽인 30번 열에 앉았지만 마지막에 내렸다. 

나가려던 아저씨가 열린 문 앞에서 딸뻘인 내게 90도로 인사했다.     


" 모우시 와케 고자이마센데시다.. (대단히 죄송했습니다..) "     


당황해서 괜찮다며 나도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눈코입이 잔뜩 구겨진 종잇장같다. 온 얼굴로 엉엉 울고 있었다. 

문이 열리길 나보다 더 기다린 사람이 있었단 걸 깨달았다. 비행 내내 신경 쓰인 어두운 표정도 떠오른다. 

비엔나에 간다는 설렘에 앞서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를 걱정하며 준비했을까. 

약을 부친 걸 알았을 때 난감함은 어느 정도였을까. 엄두가 안나 미루고 미루다 온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추억을 만들러 온 여행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준비없이 삶의 한 면을 들여다 보는 순간을 만난다.

기내에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평생 생각지 못했을 누군가를 잠시 헤아려 볼 기회를 얻는다.

일한 시간에 비례해 기억에 남아 있는 승객들도 여럿이다.          

아버지 유품을 소중히 안고 탄 아저씨, 입양가던 한국 아기와 외국 엄마, 멍투성이 권투선수, 암 진단을 받은 다음 날 미국행 비행기를 탄 아주머니, 자폐 증상을 가진 아들과의 첫 비행 전 날 잠 못 이뤘다던 엄마, 해외에선 걸어 타고 기자들이 기다리는 인천에서만 휠체어를 신청해 타고 내린 정치인도 생각난다.      

다른 이의 생활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어떤 기쁨과 아픔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크기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분명한 건 즐겁다 아팠다를 반복하며 누구든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 

좀 우습고 볼썽사납지만 아픈 척한 정치인마저 거짓말로라도 곤혹스런 상황을 무마하려 애쓴 상황이겠다. 

선 자리에서 내 삶을 살아내려 애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살며 마주친 이는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긴다. 비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내게, 나는 그들에게 무슨 자국을 남겼을까 궁금해진다. 잠시의 스침이라도 썩 고운 자욱이면 좋겠다.

4년차 때로 기억하는 비엔나 비행은 거의 십 년 전이다.

승객이 모두 내린 비행기 안, 퇴근이 코 앞이니 평소라면 하기 음악에 덩실댔을 즈음이다.

울며 돌아서는 뒷모습에 덩달아 눈물이 났다. 말리느라 힘들어 그런 줄 안 동료가 위로한다. 

열시간을 씩씩하게 잘 참아놓고 왜 우냐 물었다.

"아니 아저씨가 너무 우셔서" 말고 별 다른 답은 못했다. 인천에 내리기 전까지 조용했던 아저씨지만 작은 등이 건네는 이런저런 얘길 들은 것도 같다. 

각자의 삶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서로에게 친절하란 책 구절을 떠올렸던 날, 

30G 승객이 남긴 흔적은 꽤 또렷하다. 일단 할 수 있는 농담의 수가 줄었다.




* 착륙 후 비행기 문을 열기 전, 지상에 맞는 설정으로 바꾸기 위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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