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어린 시절 꿈이 뭐냐는 질문에 교사가 되고 싶다는 대답을 자주 했다. 더 어릴 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국민학교(그 시절에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이하 ‘초등학교’로 칭함) 1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그런 대답이 쭉 이어졌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세련되고 멋진 분이셨다. 학교에서 2차선 도로 하나 건너면 될 정도로 우리 집은 학교와 가까웠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버스로 출퇴근 하는 선생님을 학교 밖에서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들이 다 모여 사는 대가족이었다. 아버지 형제는 7남매로 결혼을 하여 독립한 삼촌 한 분과 고모 한 분을 제외하고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모두 한 집에 살았다. 물론 대가족의 장점도 있지만, 때로는 각자 바쁜 어른들이 나한테 큰 관심이 없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도와 농사일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어린 동생을 돌보셔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다. 유치원에 다녀본 적 없는 나는 학교 가는 것이 마냥 신기했고, 거기서 만난 선생님은 뭔가 특별해 보였다. 농사일을 하는 엄마나 매일 보는 고모들과는 달리, 뭔가 세련되어 보이는 선생님의 외모는 초등학교 1학년의 눈에 너무 멋져 보였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 때 딱 그런 마음가짐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에 대한 동경과 존경심은 지속되었다. 그러다보니‘너는 장래희망이 뭐니? 커서 뭐가 될 거니?’라는 어른들의 질문에 늘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제일 부러웠던 것은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제일 부러웠다. 엄마에게 학원을 보내달라고 해도 안 가도 된다며 보내주지 않았다. 친구들을 따라 미술학원 체험을 하고 온 날은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셋째 고모가 피아노학원을 등록하자 몇 번 따라가게 되었다. 혼자 다니기 심심했는지 나를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모가 엄마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2학년 때부터 나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아주 성실한 편이었다. 선생님이 한 곡을 10번 연습하라고 하면 선생님이 나를 지켜보던 지켜보지 않던 꼭 10번을 연습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진도가 잘 나갔다. 친구들보다 피아노를 늦게 시작한 편이었지만,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학교 대표로 합창부, 합주부 반주를 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고모는 몇 달 다니다가 학원을 그만두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된 피아노 수업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계속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학교를 마치면 동네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친구들과 숨바꼭질 등 각종 놀이를 하며 지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고 나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당시 한 반에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았었기 때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여러 면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학년 음악 시간에 작곡 수업이 있었다. 내가 작곡한 곡을 보고 담임선생님이 많이 칭찬해 주셨다. 그 때는 학원을 막 다니기 시작한 때였지만 선생님의 칭찬에 앞으로 피아노를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피아노를 배우고 잘 치게 되면서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많아졌고,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3학년 때부터 합주부원을 뽑아서 정기적으로 연습한 후 1년에 한 번씩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공연을 하곤 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합주부원으로 활동을 했다. 3,4학년 때는 리코더를 불었고, 5,6학년 때는 오르간과 피아노를 연주했다. 매해 큰 무대에 섰던 그런 경험들이, 비록 음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서는 자연스럽게 피아노 선생님이 나의 꿈이 되었다. 학원에서 피아노 발표회도 하고, 신문사 등에서 주최하는 피아노 대회에서 금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내가 피아노를 꽤나 잘 친다고 믿게 되었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들은 자매였는데, 훌륭한 피아노 실력이 부럽기도 했고 자매들끼리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부러웠다. 피아노 선생님들은 모두 우아해 보이고 다 좋아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른들이 ‘너는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될 거니?’라고 물으면 ‘피아노 선생님’이 될 거라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체르니 50번에 모짜르트, 베토벤 등 작곡가들의 원곡을 연주하게 되면서 난이도가 높아졌다. 피아노 학원을 5년 넘게 다니다 보니 슬슬 지겨워지기도 했다. 마침 그 때쯤 엄마가, ‘피아노는 그냥 취미로 하고 공부나 하지’라는 말에 얼씨구나 하고 당장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다. 피아노 학원은 그만 두었지만 나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당시 음악시간에는 선생님을 대신할 반주자가 한 반에 한 명씩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계속 반주자로 활동을 했다. 고모 결혼식과 친구 결혼식 반주를 해주기도 하면서 엄마 말대로 피아노를 취미로 살려 잘 활용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6년을 칠곡에서 보냈다. 그 때는 정말 원 없이 놀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 즈음 새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그만두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해서인지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나의 성적은 중학교 3학년까지 수직상승했다. 반에서 1등, 전교에서 1,2등을 달리면서 성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의 칭찬에 으쓱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알파벳을 처음 접하고 뭔가 막막하긴 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다른 나라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마냥 신기했다. 외국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영어로 나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영어를 말하고 있을 때는 현실에 있는 내가 아닌, 또 다른 자아가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좀 더 솔직해지고 더 많이 웃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처음 배웠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한 프랑스어!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매력도 있었겠지만, 영어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영어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재미있고 신나는 일인데, 불어로도 소통을 하다니 정말 멋진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불어에 매력을 느끼게 된 데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불어 선생님의 영향도 컸다. 키가 크고 늘씬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학생들을 대하는 분이셨다. 패션 감각도 뛰어나서 거의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오셨다. 그런 외향적인 것도 기억에 남지만, 선생님만의 수업스타일과 티칭 노하우가 특히 더 강렬하게 남아있다. 내가 교사를 하고 있으니 그런 부분이 더 기억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어 선생님은 교과서 내용을 가르친 후 학생들이 스스로 그 내용을 정리해 보게 했다. 한 단원 학습이 끝날 때마다 A4 용지 반 장에 핵심단어, 핵심 문장 등을 정리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단원 내용이 스스로 정리가 되는 것을 느꼈다. 뭐든 대충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나는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었지만, 검사를 맡을 때마다 잘했다는 선생님의 칭찬이 불어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던 것 같다. 선생님이 나를 예뻐한다는 느낌이 드니까 수업 시간에 더 잘 듣게 되고 과제도 열심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불어를 참 재미있게 가르치셨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불어를 많이 알려 주셨다. 당시 마몽드ma monde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인기였는데, 문법적으로는 몽몽드(mom monde, monde가 남성형 명사이기 때문에 ma라는 여성 관사가 아닌, mon이라는 남성형 관사가 와야 함)라고 써야 하지만, 발음하기 어색하니까 ‘마몽드’라고 하는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런 이야기들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한 단원 수업이 끝날 때마다 샹송을 배우기도 했다. 이 때에도 그냥 샹송을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샹송 가사 내용 중에 우리가 알아야 할 문법 사항이 있으면 그것을 노래를 통해 익히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선했던 것은 샹송 수업한 내용 그대로를 중간고사, 기말고사 문제에 출제했던 점이다. 다른 과목은 교과서 내용을 암기하거나 어려운 학력고사 스타일의 문제였다. 그러나 불어 과목은 샹송을 부르면서 수업을 하고 그 내용을 그대로 시험에 냈다. 수업 따로 시험 따로가 아니라 수업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시험에 냈던 것이다.
외국어를 좋아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전문 번역가나 동시통역가가 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이 나의 사춘기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른들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 있어서 그런지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저렇게 욕먹고 살 바에야 선생님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립학교에 다니다가 사립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분위기가 좀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릴 때는 교사가 마냥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커 갈수록 교사에 대한 안 좋은 인식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교사는 안할 거야. 더 좋은 직업 가질 거야’라는 그런 심리도 작용했던 것 같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