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영어 부전공자의 열등감 vs 노력

[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by 선경지명
250415_학생_주도성을_돕는_프로젝트_수업(울산시교육청)_(1).jpg

내 주전공은 불어교육이며 부전공은 영어교육이다. 고등학교 때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하는 것이 목표였고,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때도 영어교육과로 진학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약간의 열등감이랄까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교에서는 동기들과 불어를 공부하면서 불어에 매력에 푹 빠졌다. 프랑스어 능력시험인 DELF와 DALF 시험을 준비하고 치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의 사범대학교 불어교육과 정원은 10명이다. 국어교육과 정원이 40명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이다. 보통 강의 하나가 개설이 되려면 최소 5명 이상은 수강 신청을 해야 했다. 그런 구조에서 독어교육과나 불어교육과 학생들은 다른 과목을 부전공하여야 졸업 학점을 채울 수가 있었다. 1학년 2학기 때였는지 2학년 때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부전공을 정하는 시점에서 한참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하기에는 국어가 나을 것 같기도 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어를 좋아하던 나는 영어가 더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친구들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의 단짝친구 두 명은 각각 국어, 영어를 부전공으로 택했다. 그 중 한 명은 지금 국어교사를 하고 있다. 같은 학번 동기들 10명 중 2명은 초등학교 교사로, 3명은 국어 교사로, 나는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가끔씩 나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 때 국어교육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 또 많이 달라져 있을 텐데.

대학교 입학 때는 사범대를 들어가서 졸업만 하면 누구나 다 교사가 되는 줄 알았다. 입학을 하고 나서야 교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신입생 때 사범대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있었고, 사범대 선배들이 모여 데모를 하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사범대가 폐지되는 것은 막았지만, 임용이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불어교육과나 독어교육과의 경우 내가 졸업을 앞둔 몇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임용 티오가 거의 없었다. 티오가 없다는 것은 수요가 없다는 것, 불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없다는 것이었다. 졸업반 때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대학원에 진학하여 불어 실력을 쌓고 있으면 불어 교사 티오가 생길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 전국에서 단 한명이라도 불어교사를 뽑게 되면, 반드시 시험에 붙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장 불어교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는 학부 때와는 다른 수업 방식에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여유 있는 시간에 과방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내가 읽어야 할 책이 이렇게나 많구나, 어릴 때부터 책을 읽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던 시기였다. 학부 때처럼 작품의 일부분만을 읽거나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작품을 읽고 나의 시선에서 분석하여 발표하는 방식의 수업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작품 분석한 관점에 대해 교수님께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 과정에서 진정한 공부는 남이 알려주는 지식을 그냥 외우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깊게 하고 넓히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부의 참맛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원 수업은 너무 재미있었지만, 대학원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하며 살까를 고민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불어불문학과 대학원은 불어교육과와 분위기가 달라서 집안이 좋아 보이는 학생들도 많았다. 대체로 졸업 후 취업을 하기보다는 결혼해서 살림을 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결혼해서 집에만 있을 성격은 못된다고 판단을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대학원까지 졸업하고도 백수로 사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생겼다. 당시 학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시간강사 선생님을 학부 때는 교수님으로 정말 우러러 보고 다녔는데, 그 분이 영어 임용고시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분조차도, 영어 임용을 치려고 다시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불어교사가 되는 것은 당장 불가능한 일이니 일 년간 쉬면서 영어 임용고시를 준비하자는 생각이었다. 초・중・고 12년뿐만 아니라 대학교 4년도 휴학 한 번 없이 바로 졸업한 내가 휴학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학부 때 휴학하고 어학연수도 가고 해외여행도 좀 다녔더라면 하는 후회도 든다.

노력 끝에 결국 임용고시에 합격을 했다. 시험에만 붙으면 모든 것이 다 될 줄 알았는데, 막상 학교에 발령을 받고 나니 내 영어 실력이 너무 형편없게 느껴지고 열등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위 잘나가는 학군에 있는 학교에 발령을 받게 되었다. 학생들 중 외국여행을 갔다 오거나 외국에서 살다가 온 학생들이 많았다. 나의 학창시절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였다. 다들 내 발음을 비웃는 것 같고, 내 영어 실력을 시험하는 것 같고, 내가 불어 전공자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영어 교사로서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나 자신의 영어실력 향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영어를 잘하고 많이 알고 있어야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생들 앞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영어 실력이 탄탄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내가 많이 알고 있어야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 외에 그래도 명색이 영어 교사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스스로의 높은 기준도 작용했다. 또한 ‘영어 교사가 영어를 저 정도 밖에 못해? 발음은 왜 저래?’등 주변에서 비난을 받게 될까봐 영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역시 내가 영어 전공자가 아니라 부전공자라서 늘 부족함이나 자격지심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들수록 교재 연구를 더욱 열심히 했다. 그럴수록 학습지와 파워포인트 등 수업자료를 만드는데 더 공을 들였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영어 공부의 일환으로 여름방학 3주간 어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어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나의 영어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표현능력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3주간 미국 현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침실이 5개 정도 있었고 수영장도 있는 집이었다. 호스트는 전문적인 홈스테이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10명 정도가 한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일본, 중국, 프랑스 등 다양한 곳에서 온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보다 10살 어린 학생이 있을 정도로 대부분 연령이 낮았다. 동양권 학생들의 특징은 영어 실력에 상관없이 대부분 말수가 적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이었다. 반면 서양 문화권 학생들은 영어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다. 자세히 들어보면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도 많았다. 하지만 영어로 말하는 것에 크게 두려움이 없다는 점이 놀라웠다. 나에게는 문화충격이었다. 대학 3학년 때 갔던 유럽 배낭여행 이후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한 팀으로 움직였던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홈스테이에서나 어학원 수업 중에 유럽이나 미국 학생들이 거침없이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보며 ‘아! 이래서 서양 문화권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이 간 친구와 나는 입학 테스트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상급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문법 수업 시간에는 탑을 달렸다. 강사가 묻는 질문마다 대답을 잘해서 칭찬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연극 수업이나 나머지 다른 수업에서는 늘 입을 다물게 되었다. 개인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좀처럼 우리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문법 문제를 푸는 수업에서조차 서양 문화권 학생들은 강사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냥 정답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따라서 기계적으로 빈칸에 들어가는 단어는 이거네, 스펠링은 이거지라고 정답을 맞히기 급급했다. 반면에 서양 문화권 학생들은 문맥 속에서 그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관한 의문점들을 스스럼없이 강사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신선했다. ‘아, 이런 점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구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수업을 해야할까’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깨달은 영어를 잘 하는 방법은 우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업 중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손을 들고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학연수에 참여한 친구와 나는 보편적인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알고 있더라고 손을 들어 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강사가 우리를 지목하여 문제의 답을 물었을 때 대부분 정답을 말하기는 했다. 대화는 딱 그 정도였고 그 외에 깊이 있는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유럽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등이 어순이 같아서 받아들이기 편한 것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수업 중에 교사-학생, 학생-학생 간에 토론이 일어난다는 점일 것이다.

스스럼없이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문화 외에 하나 더 들자면,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문화이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또 아무도 네가 틀렸다고 지적하거나 탓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내 의견이 틀리면 어떡하지, 내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따진다. 영어 발음이나 문법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터라 나 자신도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을 말할까봐 완벽한 문장을 이야기 하려고 늘 신경을 쓰고 주눅이 들어 있다. 영어를 전공하게 되면서는 그런 부담이 더 큰 것 같다. ‘영어 교사가 영어를 저 정도밖에 못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다. 발음도 마찬가지이다. 혀를 많이 굴리고 꼭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야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한동안 조기영어교육이 이슈가 되고 혀 수술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발음에 대한 집착은 남다르다고 하겠다.

어느 날 홈스테이 집에서 호스트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유럽 학생들은 영어를 참 잘하고 발음도 좋은 것 같다고 하니 자신이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호스트는 백인이었는데 본인이 듣기에 유럽 사람들은 특유의 악센트가 있어서 알아듣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어를 한다는 것이다. 정통 아메리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오히려 내 발음이 평탄하고 알아듣기 더 쉽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호스트는 나와 같이 생활하고 있는 한 중국 여학생의 예를 들면서 무조건 말을 많이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 여학생이 홈스테이 집에 도착한 후 몇 주간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주인아저씨와 말문을 트고 난 후 매일 주인아저씨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 여학생의 경우 어학 프로그램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주인아저씨와의 수다가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나는 체류기간이 그 학생만큼 길지가 않아서 말문이 트일 정도로 실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지금도 한번씩 3주간 지냈던 그 홈스테이 집과 호스트가 생각난다.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그 분과 연락하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연락이 닿지는 않았다.

방학마다 미국에 연수를 갈 수는 없었기에 매일 저녁 퇴근 후 영어 회화 학원을 다녔다. 방학 때마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각종 영어교사들을 위한 연수에 참여한다든지, 토익이나 텝스 시험에 응시를 한다든지 하면서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신규교사 연수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북클럽을 하기도 했다. 영어 원서를 하나 정해서 같이 읽고 질문을 준비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초중고 시절 영어 원서를 한 번도 접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이 시기에 영어 원서로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영어에 대한 흥미가 새롭게 생겨났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영어 원문 자체가 주는 감동이 남달랐다. 좋은 문구는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하고 그 표현을 활용해보는 과정에서 영어 실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또한 정서적으로도 많은 감동을 받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이 책은 한글판을 접하기 전에 스터디 그룹에서 영어 원서로 먼저 읽었다. 스토리가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그 이후 영어 원서 읽기 스터디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먹어라, 기도하라, 사랑하라』를 영어 원서로 읽고 스터디 멤버들과 동명의 영화를 같이 보기도 했다. 책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영화 내용이 책만 못하다고 다 같이 실망하기도 했다. 영어 원서 읽기 스터디를 통해 영어 실력도 향상되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문학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고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자 만족감도 얻으면서 몇 해 동안은 안정적으로 영어공부에 매진했다. 남들은 퇴근하고 피곤한데 학원을 다니고 스터디를 하고 그걸 어떻게 다 하냐고 했다. 뭐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에 나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만족을 위해 힘들어도 피곤해도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이제 교직생활 20년이 되어 가는 나는 교사 대상 연수 강사로 나간다. 임용에 합격하고 교사로 발령 받은 지 4년이 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1정 연수라는 것이 있다. 사범대를 졸업한 학생들에게는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주어진다. 사범대를 졸업하면 일단 교사가 될 자격을 갖추게 된다는 뜻이다. 교직경력 4년이 지나면 1급 정교사가 된다. 이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연수가 1정 연수이다. 전공에 대해 다시 한 번 공부하게 되는 기회인 셈이다. 나는 2,3년 전부터 중등 영어과 1정 연수 강사로 나가고 있다. 2018년에는 경기도, 전라도 등으로도 1정 연수를 받는 후배 교사들을 만나러 갔다.

2000년에 발령을 받고 2004년에 1정 연수를 받을 때 연수 강사님들을 보며, ‘아, 저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감히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런 내가 지금 1정 연수 강사로 나가다니! 1정 연수뿐만 아니라 단위학교 연수, 내가 살고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경북 등 전국적으로 교사 대상 연수 강사로 나가고 있다. 책을 번역하기도 하고 원격연수를 촬영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비록 내가 영어 전공자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노력과 시도를 통해 영어 전공자 이상으로 활동을 하며 여러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연수에서 내가 수업을 잘한다고 실력이 뛰어나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과 한 수업 활동, 나의 고민들을 진솔하게 나누다 보니 선생님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내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세로부터 더욱 열심히 노력할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그런 결핍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를 하게 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되는 것 같다. 적절한 부족함과 적절한 도전과제가 있어야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 역시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노력하게 된다. 그런 노력을 통해 과거와 비교했을 때 조금이라도 발전한 내가 있는 것 같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2.20.) 중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4. 지금도 기억나는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