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관운이 있는 사람만 교직에 들어올 수 있다, 되고 싶어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관운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교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시기, 사주카페에 가서 손금을 본 적이 있다. 관운은 있으나 뺨에 있는 큰 점을 빼야 시험에 붙을 거라고 했다. 물론 그 점을 빼지 않고도 임용고시에 합격했지만, 나한테 관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도 왠지 기운이 났다. 주변 동료교사들을 봐도 다른 직업군보다 교사는 확실히 교직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고 학생들에 대한 사랑도 넘쳐난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대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적어도 교사라는 직업을 택하였으면 거기에 걸맞는 본인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를 직업으로 인식하든 소명으로 인식하든 교사라는 직업을 떠나 모든 직업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책무성이야 말로 모든 직업인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아닐까? 일단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본인 스스로 '선생님'이라는 직책에 맞는 마인드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교사란 학생은 물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이다. 따라서 학생의 꿈을 밝혀주고 인도해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그만큼 생각과 행동에 있어 주의해야 할 것도 많음을 명심해야 한다. 교사 개인의 실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학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학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와 교과 전문가로서의 실력과 내공을 쌓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교직생활에 임해야 한다. 학생을 지도하는 큰 가치를 지닌 직업임을 명심하고 철저한 준비와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
교직 생활을 쉽게 봐서는 안 된다. 경력이 쌓인다고 아무런 연구 없이 수업 능력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수업연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본인이 많이 알고 있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잘 가르쳤다고 해서 학생들이 다 배워서 흡수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특성을 잘 분석하고 그에 맞게 수업연구를 철저히 하다보면 자신의 교과 전문 지식도 저절로 향상될 것이다. 당장 자신에게 그런 소명의식이 없다거나 교과 전문 지식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교사로 거듭날 수 있다. 노련한 수업 운영도 하나의 소소한 생각과 결심, 그리고 실행에서 비롯된다.
교사라는 직업은 보람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 적응에서, 교우 관계에서, 학업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교사로서 나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된다. 교사는 어떤 경우에도 학생들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디딤돌 같은 존재가 되어주어야 한다. 단지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다. 아이들 곁을 지켜주면서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마음 놓고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실패도 경험해 보고, 그 경험들을 통해 성장해 갈 수 있도록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런 나의 믿음, 내가 교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는 3월 첫 날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글에 잘 드러나 있다. 그 중 일부를 옮겨온다.
2006학년도 2학년 8반 학급경영은 이렇게...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6학년도 2학년 8반 담임을 맡은 최선경입니다. 저의 학급경영에 대한 평소 생각들과 올 한해 학급경영의 계획들을 부모님들께 말씀드리고 학급경영에 협조를 구하고자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학급경영에 있어서 혹시 궁금한 점이나 건의할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1년 동안 자녀들의 담임을 맡은 저에게 부모님들께서 믿음을 많이 실어주셨으면 합니다. 부모님들이야말로 학생들과 저의 든든한 후원자시니까요. 믿음 주시는 만큼 힘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1.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 모든 문제는 이 두 가지로 다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사가 학생을 포기해서는 안되겠죠. 저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마지막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2. 학급 담임으로서의 목표
중학교 3년 생활 중에서 학생들이 가장 흐트러지기 쉬운 때가 바로 중학교 2학년 시기라고들 합니다. 1학년 때 배운 기초학력과 기초 생활습관을 잊지 않고 잘 연계하여 3학년 생활의 토대를 마려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습니다. 특히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생활지도에 많은 신경을 쓰겠습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저는 학생들의 모둠활동을 활성화하고 학생들이 좋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하겠습니다.
내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먼 훗날 가끔씩 학창시절을 떠올렸을 때, ‘아, 그래도 우리 선생님이 나를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시고 내가 잘못한 것을 바로 잡아주셨지’라는 기억들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소중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첫 발령지의 마지막 해에 처음으로 남학생 반 담임을 맡았다. 남학생 반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나도 걱정이 컸다. 나보다 덩치도 다들 더 큰 40명의 남학생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막막했다. 오토바이 절도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아이, 엄마의 가출로 사춘기를 겪고 있던 아이의 집을 찾아가 등교시킨 기억 등 아이들과 함께 했던 1년은 다사다난했지만, 좋은 추억도 많았다. ‘선생님하고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할 만큼 나를 많이 따르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 해에 학급문집을 만들었다. 졸업식 날 문집을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쓰기 싫던 일기가 책으로 나온 것을 본 아이들은 적잖이 감동하는 눈빛이었다. 중학교 3학년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된 한 아이는 기차 안에서 문집을 읽다가 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학교 다닐 때는 매일 혼나기만 해서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문집을 읽으며 그간의 추억이 떠오르고 나에 대한 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문집을 간직하고 있다.
몇 년 만에 그 제자들을 만났다. 이제는 30대가 된 제자들을 보니 정말 이제는 같이 늙어간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선생과 제자의 구분이 없었다. 모두들 예전에 코 흘리게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애 아빠도 있었고, 곧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건네는 제자도 있었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도 나누고 요즘 참 먹고 살기 힘들다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다가도 중학교 시절 나한테 혼났던 얘기며 혼나면서도 그저 놀고 싶어 급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놀았던 얘기를 할 때는 다시 해맑은 아이들로 돌아가 있었다. 나보다 더 그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 혼났으면 선생님이 미울 만도 한데 자신이 잘못했으니 당연히 혼난다고 생각했다는 아이의 말에서, 나의 진심을 누군가 그렇게 알아주고 세월이 흘러서도 찾아주었다는 점이 새삼 고마웠다. 이런 맛에 선생하는 거겠지!
아이들의 입을 통해 나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교육의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내가 지도하고 있는 학생이 바뀌지 않는다고 조바심내지 말자. 내가 그들에게 한 말과 행동의 영향력이 1년 후에 나타날지 10년 후에 나타날지 20년 후에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아주 작고 사소한 영향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이니만큼 그 역할에 충실하고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다. 이렇게 졸업 후에도 인연을 맺은 학생들이 나를 찾아와주니 반갑다. 항상 내가 있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이렇게 먼 훗날 성인이 된 학생들이 찾아와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지친 일상에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는 일이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 내가 있는 이 자리를 더욱 굳건히 지키고 꿋꿋하게 내 일을 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본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2.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