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결혼 후 4년 만에 어렵게 아이를 낳고 2년간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2010년 복직을 하면서 초임 발령 당시 느꼈던 그런 막막함과 적응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겪게 되었다. 2010년의 상황은 2000년의 상황과는 또 달랐다. 2000년에는 신규교사라서 뭔가 실수를 해도 선배교사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신규니까 실수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면, 2010년은 이야기가 달랐다. 학교 규모부터 이전 학교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2010년 내가 맡은 3학년은 6반까지 있었다. 나는 3학년 2반 담임을 맡았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50대인 3학년 1반 부장교사 다음으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던 것이다. 휴직 전에 근무했던 두 학교는 학교 규모도 크고 신규교사 발령이 거의 나지 않던 곳이라 젊은 순서로 치면 열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복직하고 보니 나는 나이가 많은 축이었다. 나이도 나이지만 교직경력도 많은 편이라서 같은 학년을 담당하는 동료교사들은 자주 나에게 학급경영이나 학생지도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을 주긴 했지만 속으로는 늘 나도 힘든데, 내 코가 석자인데, 나도 제대로 못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신세가 신규교사보다 못한데 내가 누구한테 조언을 줄 수 있겠나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복직하니 나이스 시스템도 새롭게 구축되어 있고, 교원평가도 새롭게 시작되는 등 모든 것이 낯설었다. 2010년 3월 출근 첫 날은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퇴근길에 집 앞 횡단보도 앞에서 눈물을 훔칠 정도로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컴퓨터를 켜고 화면에 있는 글씨를 읽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남편에게 학교 그만두고 교육공무원 행정직 시험이나 쳐야겠다는 말을 한동안 계속 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도, 수업을 하는 것도, 업무를 하는 것도 다 막막했다.
세 살 아이는 어린이집 종일반을 다니다 보니 감기나 유행하는 병을 늘 달고 살았다. 병원에 며칠 동안 입원을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병원에서 밤새 아이를 돌본 후, 바로 학교로 출근해야 했다. 학교일과 육아에 치이다 보니 자주 병이 났다. 병가도 여러 번 냈다. 목은 수시로 잠겨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며 감기몸살을 달고 살았다. 그만큼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규교사 시절 선배교사들에게 받은 사랑만큼 나는 후배교사들에게 돌려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학교 일에 육아에 마음에 여유가 없다보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 모습을 떠올려 봐도 예전에 만났던 나의 선배 교사들만큼 후배 교사들을 사랑으로 챙기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선배교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분들이 몇 분 있다. 신규교사 첫 발령지에서 만난 선배교사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 분들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우리 신규교사들을 바라봐 주고 우리가 하는 실수를 예쁘게 봐주셨다. 호칭도 그냥 최선경 선생님이 아니라 ‘예쁜 최선경~’이라고 할 정도였다. 후배교사에 대한 애정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가장 크게 남아 있는 것은 그 분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와 수업에 임하는 자세 등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지시나 조언이 아닌, 선배 교사들 스스로가 학생들을 존중하고 위하며 한 명의 아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도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 기억이 남는다. 학생들과의 관계도 물론 좋았고 학급경영이면 경영, 수업이면 수업 모든 일들을 훌륭하게 해내셨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들이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 하나라도 더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그 자세들이 너무 보기 좋았다. 나도 은연중에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학교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주변 동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꺼운 마음으로 발 벗고 나서 도와주셨다. 후배 교사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교장실로 달려가 개선을 요구할 정도로 용기 있는 분도 있었다. 신규교사가 당돌하게 이 업무는 내 업무가 아니니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래~ 그렇게 해. 그 업무는 내가 할게~ ’라고 웃으며 말씀하셔서 오히려 내가 더 부끄러웠던 적도 있다.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도 신규 교사들의 교육 활동을 많이 지지해 주시고, 젊은 패기에 저지른 실수들도 다 품어 주셨다. 학부모 민원이 있어도 그만큼 열심히 하다 보니 생긴 실수라고 오히려 대변해주는 등 선배교사들 모두가 후배교사를 보듬어 주는 그런 환경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요즘의 세태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학부모의 부적정한 민원에 녹초가 되는 교사를 보호해 주는 아무런 장치가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당시 교무부장을 맡았던 선생님은 현재 교사전문학습공동체 회장을 맡고 있고 수석교사로 근무 중이시다. 또 한 분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내가 발령받은 해에 복직된 선생님으로, 연배는 우리보다 높았지만 권위의식 없이 우리를 편하게 대해주셨다. 학교에서 컴퓨터 수리 등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선생님, 이거 좀 알려주세요’라고 하면 본인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도움을 주려고 애를 쓰셨다. 이 분 또한 지금은 수석교사로 활동하며 배움의 공동체를 전파하고 계신다. 이 분들 외에도 당시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이 이제는 수석교사나 장학사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또한 평교사로서 자신의 자리에서 늘 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 분들과 나눔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여러 선생님들에게 수업 나눔을 하고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다 선배교사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것들이 몸에 베여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구나 이런 선배교사를 만나면서 교직을 시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러 연구회 활동과 블로그 등을 통해 수업 나눔을 하고는 있지만, 정작 내 옆에 있는 동료교사의 아픔을 함께 하고 있는지, 예전 선배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어려움에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소위 멘토라는 말로 영어과 신규교사 대상으로 멘토-멘티 활동도 해봤고, 국립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지금은 교육실습생 지도도 하고 있다. 교직생활이라는 것이 정말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멘토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교직 생활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막연하기만 하다. 그래도 나름의 기준은 생겼다. 교사의 수업 스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이 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조성되어야 교과 지식을 머리에 넣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따라서 수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학급경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담임교사는 가정에서 부모님의 역할과 같다. 학교 업무의 90% 이상이 학급 담임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부서별 보직교사들이 부서별 업무를 하기는 하지만, 담임교사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는 업무들이 대부분이다.
신규교사들이 수업과 학급경영, 학생들과의 관계 못지않게 어려워하는 부분은 부서별 업무처리이다. 교과수업이야 각자 준비해서 본인의 수업시간에 가르치면 되겠지만, 학교 업무 같은 경우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교사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실수를 하게 되면 타격이 크다. 해마다 어떤 업무를 맡을지 알 수 없고 새로운 업무를 맡아서 하다 보니 창의적인 방식보다는 작년 담당자가 했던 업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3월 첫 발령을 받고 자신이 맡은 업무를 손에 받아들면 그저 멍할 뿐이다. 옆에 앉은 동료 교사에게 물어서 업무를 처리하기는 하겠지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은 없다. 그냥 작년 담당자가 올린 공문을 재작성 버튼을 누르고 연도만 바꿔서 상신을 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학교 수업에서나 임용고시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공문을 찾아보고 결재를 올리고 물품을 주문하는 업무 등 새롭게 배워야할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규교사 대상으로 하는 연수가 있기는 하지만, 나이스에서 결재 올리는 방법과 에듀파인에서 품의를 올리는 방법 등 세세한 것까지 교육을 받지는 않는다. 설사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학교라는 조직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워낙 천차만별이다 보니 몇 시간의 연수로 그 모든 상황을 아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신규교사 연수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한 내용은 따로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좋겠다. 현재 상황에서는 신규교사들의 경우, 학교 업무에 관해서 의문이 생기면 같은 학교 내 선배 교사에게 주저 없이 질문을 하고 배워나가는 것이 큰 실수를 막는 길이다. 앞으로 학교 내에서나 학교 간에 멘토-멘티를 맺거나 신규교사가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면 바로 해결해주는 SOS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신규교사가 학교 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우리 교육 시스템이 과연 신규 교사들이 교직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선배교사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롤 모델로 삼고 싶은 분이 또 있다. 몇 해 전 『선생하기 싫은 날』을 읽고 블로그에 기록해둔 글을 여기에 옮겨본다.
『선생하기 싫은 날』을 읽고(2016.1.3.)
눈물 흘리면서, 그것도 여러 번의 눈물을 흘리며 티슈를 옆에 끼고 책 읽은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요즘 계속 수업 철학, 기법에 관한 책들만 읽다가 감성적인 글을 읽으니 느낌이 새롭다.
일단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작가분이 나랑 비슷한 면이 많은 분이구나 하는 것이다. 잘 울고 잘 웃고 마음이 여리고 그렇지만 일에는 욕심이 많고 새로운 수업방식에 도전하고 학생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등.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는 워킹맘의 심정도 너무 공감이 갔고, 교직 16년째(육아휴직 2년 빼면 14년)인 내가 몇 년 전부터 갖고 있던 선배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한 나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반가웠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생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그 마음에 너무 공감이 가서 눈물이 자주 났던 것 같다.
2014년 거꾸로교실을 실천하며 얻은 노하우로 2015년부터 교사 대상 연수 프로그램에 강사로 활동하면서, 2010년 테솔연수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법)를 들으며 처음 품었던 영어교사 트레이너trainer라는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 앞으로 이를 어떻게 더 발전시켜 나갈지가 고민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멘토의 역할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엿볼 수 있었고,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의 방향, 무엇보다 가슴 속에 품은 작은 꿈이 있다면 버리지 말고 꼭 끝까지 키워내라는 말이 지금 신년 계획을 세우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내 속에 많이 남는다.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동료교사, 선배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나의 이야기를 한번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아마도 말은 안했지만 오래전부터 내 맘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꿈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번 방학에는 2015년 학생들과 했던 1년간의 활동을 정리하여 문집 같은 걸 한번 만들어 볼 계획이다.
12시 넘어 읽기 시작한 책인데 새벽 3시가 다 되어간다. 나의 삶에 멘토, 롤 모델을 오늘 만난 느낌이다. 꼭 한번 뵙고 여러 말씀 나누고 싶다. 기억하고 싶은 표현들을 내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사진으로도 남겨둔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앞에 소개한 글 속의 나처럼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동료교사나 선배교사를 꿈꾸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할 것이다. 어떤 꿈을 꾸든 그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가슴 속에 품은 작은 꿈이 있다면 버리지 말고 꼭 끝까지 키워라. 그리고 도전해라. 꿈을 품고 있는 한 그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단 도전하는 자에게만.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2.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