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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Aug 24. 2022

5km 마라톤에 첫 도전

못한다는 이유로 하지 않으면, 그 즐거움을 알 수 없으니까

평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전단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보통 동네 소식, 아파트 소식 등이 기재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집 근처 광명역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대회 코스는 하프, 10km, 5km 세가지였다.


이 소식지를 보고 나서 '5km라면 나도 어찌어찌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어 참여 신청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며칠을 보냈다.


고민의 이유를 스스로 정리해보니, 아래와 같았다.


달리기 대회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

- 달리기를 취미로 삼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동경해왔다. 무라카미 하루의 에세이 좋아하는데, 에세이(먼 북소리 or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속의 하루키가 매일같이 새벽에 달리기를 하고, 오전 중에 써야 할 작업고, 오후부터는 여유롭게 보내는 루틴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해왔다. 하루키 에세이뿐 아니라 '아무튼, 달리기', '마녀체력' 등 달리기에 대해 쓴 다른 책도 아주 재미있게 읽으며 달리기에 대한 동경을 키워다.


- 그래서 작년 가을한동안 달리기 연습을 했었고, 최근에는 아침산책을 하면서 걷는 중간에 100m씩, 200m씩 달려보기를 시작했는데, 그러던 참에 내가 사는 동네에서 달리기 대회가 열리고,  마침 대회까지 한달 무렵이 남은 시점에 대회 안내문을 보게 된 것은 운명이다. (연습기간을 고려할 때, 대회 며칠 전에 안내문을 보았다면 도전이 불가능할 것이므로)


- 달리기 대회가 먼 곳에서 열린다면 가느라 오느라 에너지 소모 및 시간 소모가 커서 도전하기 어려울텐데,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스타트/피니쉬 지점이 있어, 그 어떤 대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 신청을 망설이는 이유

- 나는 달리기를 잘 못한다. 어릴 때 시골에서 뛰어다니면서 컸는데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달리기를 못한다. 발도 느린데, 심폐능력이 좀 부족하여 달리기를 하면 숨이 너무 차서 힘들다. 어떤 날은 단순히 숨찬 것을 넘어 장이 꼬이는 느낌으로 배가 아프기도 다.


- 5km를 달려본 적이 없어서 겁이 난다. 작년에 일주일에 한두번씩 달리기를 하던 때에도 공원 한바퀴(600m)를 시작으로 최대 3km(5바퀴)까지만 달려보았다. 그런데 이 3km를 달린 것도 어쩌다 한번이고,  주로 3바퀴(1.8km)를 달렸는데, 그마저도 작년 가을의 일이고, 올해는 달리기를 전혀 하지 않다가 최근 산책길에 300m 가량을 두세번 달려보았는데, 너무 숨이 차서 더 오래 달릴 수는 없었다. 이런 내가 5km를 과연 달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결국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도,  잘하지 못해서, 해본 적이 없어서 겁도 나고 걱정되어 하기 싫은 아이러니한 상태로 며칠이 지나갔다. 보통 내 일은 스스로 잘 결정하는 편인데, 달리기 대회는 좀처럼 결정을 못 내리겠어서 남편에게 슬쩍 고민을 나눠보았다. 20년 지기 남편과 나는 서로의 문제에 대해서는 분석력, 논리력, 판단력을 발휘하여 합리적인 논거를 들며 날카로운 판단을 해주곤 했다. 그런 능력은 자신의 문제보다 상대방의 문제에 더 발휘되는 법이다. 남편은 내 고민을 듣자마자 단칼에 대회 신청을 하라고 하면서 두가지 논거를 들었다. 첫째, 5km 정도는 한 달 연습으로도 충분하다. 둘째, 5km는 걸어서도 한 시간 거리이다. 정 안 되면 걸어서 들어오면 된다.


그래, 내가 달리기는 잘 못하지만 걷는 건 잘 걷는다. 걸어도 한 시간 거리라는 남편의 말에 용기를 얻어 곧바로 휴대폰을 열어 대회 참가신청을 했다. 신청하기까지는 며칠 망설이며 고민했는데, 막상 참가신청을 하고 나니까 신나고 의욕이 막 솟는다. 한 달 이상 시간이 있으니 어떻게 연습을 하는 게 좋을지 계획도 세우고 싶고, 이번 대회로 달리기가 너무 좋아져서 원정 대회까지 나가고 싶어지면 어쩌지 라는 너무 앞서간 설레발도 치면서 평범한 일상에 활력이 더해진다.


이러고 있다 보니, 내가 첫째에게 종종 들려줬던 조언이 어른인 내게도 필요한 태도였구나 라는 깨달음이 온다.


우리 아들은 유독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활동은 일부러 더 하지 않으려 하고, 훼방을 놓는 기질'이 강했다. 돌 무렵 키즈까페에서 만나 같이 놀이를 하던 또래 여자아이가 낮은 벽을 잡고 일어서 벽을 짚어 나가며 옆으로 게걸음을 시도하자, 당시 일어서기도 잘 못하던 아들은 그걸 보고 자극을 받아 일어서기를 시도하는 대신 그 여자친구 바짓단을 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 외에도 유치원 시절 혼자 양말 신는 것을 어려워해서 놀이체육 시간이 싫다고 토로하기도 했고(체육시간 전에 양말을 벗고, 체육시간 후에 양말을 다시 신어야 다고 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뜻대로 잘 안되자 앞으로 자전거를 절대 타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고, 축구 수업 중에 골키퍼를 맡았다가 큰 실수를 해서 친구들의 원성을 듣자 "나 안해"라며 코트 밖으로 물러난 후 수업 내내 친구들의 이런저런 행동이 반칙이라며 큰 소리로 지적하여 수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아들이 이런 행동을 보일 때 나는 (화를 참으려 노력하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아,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어. 아직 어린이인 **이가 이걸 하지 못하는 건 당연야. 그런데  못한다는 이유로 아예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영 이걸 할 수 없게 돼. 근데 지금 당장은 못해서 화나고 하기 싫어도 계속 계속 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게 되고 언젠가는 잘하게 되서 재미를 느끼게 돼. **이는 처음에 잘 걷지도 못했는데 금은 누구보다 빨리 달리고 높은 곳에서 점프도 잘하잖아? 그런데 만약 아기 때 다른 친구들보다 걷기를 잘 못했을 때 '흥 나 안해. 이제부터 안걸을거야'라고 포기했으면 지금처럼 뛰거나 점프를 하지 못했을거야. 그러니까 자전거도(축구도, 양말 신기도) 지금 당장은 잘 못해서 하기 싫어도 한번 계속해보자. 그럼 점점 더 잘하게 되어서 정말 재밌어질 수도 있어."


아들에게 이런 조언을 할 때마 나는, 잘하고 싶지만 당장은 전혀 잘하지 못해서 시작하기를 꺼렸던 여러가지 활동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뜨끔해지곤 했다. 달리기, 피아노, 수영, 외국어 회화, 골프 등이 그렇다. 그래서 이번 달리기 대회 참가를 시작으로, '즐기고 싶지만 당장은 잘하지 못해 꺼려졌던 활동'들을 '작게' 시도해보려고 한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게 되면 잘하지 못하는 현 상태에 대한 분노와 스트레스로 이어져 빠른 포기를 유발하므로, 최대한 목표를 작게 잡고 일단 시작해서 그 작은 발걸음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나에게 적합한 전략이다. 달리기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것만으로 일상에 활력이 더해지는 것처럼, 또 다른 작은 시작들도 소소하지만 큰 즐거움을 안겨주리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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