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얼마 전 남편과 해운대로 여행을 가서 해운대 근처 유명한 맛집을 하나 방문하려고 했을 때, 거대갈비, 암소갈비, 해목(장어덮밥)의 선택지 중에서 해목을 골랐다. 무려 1시간 반이나 기다려서 먹은 장어덮밥은 참 맛있었다.
호텔 조식을 먹을 때는 늘 먹던 소세지+베이컨+계란 조합 대신 여러가지 샐러드+연어+생선구이 조합으로 먹었다.
호텔 조식뷔페 첫접시 - 각종 채소로 만든 각종 샐러드가 참 맛있었다.
고기를 전혀 안먹는 것은 아니다. 며칠전 남편이 딸 생일을 맞아 정성껏 끓인 소고기미역국도 맛있게 먹었다. 다만 고기 건더기는 다른 가족들에게 양보하고 미역과 국물을 먹었다.
얼마 전 외식으로 쌈밥집에 갔을 때, 고기만 들어간 삼겹볶음 대신 오삼볶음으로 주문해서 오징어와 구운채소 먼저 열심히 건져먹고, 쌈채소와 밥이 남아 고기도 두점 정도 먹었다. 김밥집에 가면 여러 메뉴 중에 가급적 고기 대신 멸치나 참치가 들어간 것으로 고르고, 집 근처 이케아에 저녁 먹으러 갔을 때 미트볼 대신 플랜트볼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가 플랜트볼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그냥 김치볶음밥만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이런 정도의 느슨한 채식 지향이 내게 어울리고,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다. 십여년 전 영화 식객을 보다가 주인공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키우던 소를 잡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앞으로 소는 먹지 않겠다고 치기 어린 다짐을 했다가 단 며칠도 가지 못했던 전력이 있다. 어쩌다 그 다짐을 굽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런 내게 굳건하고 결연한 결심은 빠른 포기를 부를 뿐이다.
왜 굳이 고기를 덜 먹자고 마음먹었는지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나이가 들면서 채소가 점점 더 맛있다. 다양한 채소를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 것으로도 충분히 입이 즐겁다. 근데 평소 먹던대로 먹고 활동해도, 해가 갈수록 야금야금 군살이 붙고 몸무게가 늘어 생애 최고의 몸무게를 계속해서 조금씩 경신하고 있다. 식생활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던대로 먹어서는 계속 야금야금 몸무게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채소나 조개류, 생선의 일생과 끝을 생각하면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 않은데, 내가 먹는 돼지나 소, 닭의 일생과 끝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얼마 전 횟집에서 꿈뜰거리는 산낙지와 생새우를 먹지 못하고 멈칫거리던 일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한 끝을 거쳤을 게 분명한 고기류는 아무렇지 않게 잘 먹는 내가 조금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몸도 마음도 더 가볍게 살고 싶어서, 가급적 채소를 많이 먹고, 선택이 가능할 때는 육류 대신 생선을 선택하는 식생활을 하고 있다.크게 힘들지도 않고 맛의 즐거움도 포기하지 않아서, 좀 더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