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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Sep 06. 2022

친구가 1년간 해외로 간다고 한다

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ㄴ이라는 친구가 있다.

기수도 다르고, 처한 개인적 상황도 많이 달랐지만, 나이가 같았고, 둘다 입이 무거운 편이라 업무 얘기 회사 얘기 개인적인 얘기들을 부담없이 편하게 말할 수 있었고, 회사에서 매일 이런저런 소소하고 큰 일을 함께 겪으며 일상의 공감대를 나눌 일이 많아 꽤 친하게 지냈다.

회사가 달라진 이후에는 예전처럼 자주 대화하진 못했고, 매일 일어나는 일을 자연스레 공유할 수도 없었지, 종종 만나 식사를 하며 편하게 근황과 사는 얘기들을 나누곤 했다.


며칠전 오랜만에 ㄴ을 다시 만났는데, ㄴ은 1년동안 회사를 휴직하고 곧 영국으로 출국한다고 했다. 우와 세상에. 너무 잘됐다. 진짜 축하해. 너무 부럽다를 연발하며 식사를 하는 내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시점, 준비 과정, 향후 생활에 대한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시샘하거나 깎아내리지 않고, 순수하게 축하하고 부러워할 수 있다는 것 내가 가진 장점 중 가장 큰 강점이다. 이 날도 마음껏 친구를 축하하고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친구 ㄴ은 1년간 그저 쉬기 위해 영국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꿈으로만 간직했던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지 실험해보러 영국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너무 부러웠다. 시험해보고 싶은 어떤 일이 있다는 것도, 그걸 시험하기 위해 이곳의 생활을 훌훌 털고 1년간 떠날 수 있다는 것도.


얼마전 마음에 들어온 책의 서문을 캡처해두었는데, 그 직후 친구가 딱 이 문구대로 실행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놀랍고 부럽고 축하할 수밖에

친구 ㄴ과 내가 친하게 된 이유를 되짚어보면, 우리는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했던 것 같다. 맡은 사건, 해야 할 일은 꽤 성실하게 해내는 편이고, 일에 마음도 제법 쓴다. 그래서 둘이 협업한 사건들의 결과도 대체로 좋았지만, 일하는 과정에서 곤혹스러움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잦았다. 그래서 우리 둘이 긴 대화를 나눌 때면 매번 누군가의 입에서 "이 일은 내 천직이 아닌 것 같아. 직업을 잘못 고른 것 같아"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그래놓고 다음날에는 또 다시 열심히 일하는 것까지 비슷했다.


직업에 대한 이런 애매모호한 우리의 태도는 당시의 또다른 동료였던 ㄱ변호사 ㅇ변호사와 사뭇 달랐다. ㄱ변호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변호사였다. 참 가정적인 사람이었는데, 내가 봤을 때는 가족만큼 일을 사랑했다. 직업에 대한 애정과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쳐 자나깨나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고, 일과 관련된 대화를 할 때 진짜 신나보였고, 누구라도 스트레스를 받을 법한 상황에서도 짜증을 내거나 얼굴 붉히는 법 없이 한결같은 태도로 일을 대하는 참 변호사였다. 이러한 ㄱ의 태도 앞에서, 비교적 성실하지만 일을 천직으로 여기기는 싫은 나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조금 초라해졌다.

 

반대로 ㅇ변호사는 뭐랄까 참으로 편하게 사는 성격이었다. 발이 넓고 주변에 사건사고가 많아 일을 꽤 많이 맡았는데, 일로 좀처럼 고통받는 일 없이 강약을 잘 조절하고, 다른 변호사에게 업무 위임도 잘하고, 최대한 편하게 일하며, 골프 스키 수영 등 각종 레저를 최대한 즐기며 사는 특별한 변호사였다. 이러한 ㅇ의 태도 앞에서, 일을 천직으로 여기지도 않으면서 일에 마음쓰며 고통받는 나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조금 쑥스러웠다.


ㄱ변호사와 ㅇ변호사와도 제법 친하게 지냈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범접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일과 회사에서 받는 고충을 이들과 터놓고 나누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친구 ㄴ과 더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친구 ㄴ과 "직업을 잘못 고른 것 같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그럼 어떤 일을 했어야 좋았을까"라는 주제로 넘어간 적이 있다. 그 때마다 나는 "모르겠어..!! 나는 달리 잘하는 것도 없고,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어..!!"라는 대답을 하며 슬퍼했다. 친구 ㄴ 역시 딱히 그런 게 없다면서도 농담처럼 '그 일'이나 할 걸 그랬다며 웃곤 했다. 나는 '그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나를 둘러싼 세계는 아주 좁다..), 보통 그 일은 유흥이나 여가로 즐기는 활동이라, 친구 ㄴ의 말이 그냥 농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그냥 하던 일 열심히 하자"로 종결되고, 다음날 또 소처럼 성실히 일하는 생활로 이어졌는데, 친구 ㄴ이 지난 몇년간 농담처럼 내뱉던 그 일을 진짜 해보러 1년간 외국으로 나간다니, 진심이 담긴 친구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앞으로 영국에서 진행될 친구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 친구라도 먼저 우리 직업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그래서 내게 용기와 자극을 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진심 어린 축하와 응원을 건넸는데, 친구의 도전만으로도 크게 감화된 나는 (쉽게 감명받는 편이다..)결국 도서관에서 이런 책을 빌렸다.


뭔가 궁금하거나 하고 싶으면, 그에 관련된 책부터 읽어보는 유형 = 나


친구가 해외에 나가 있는 1년 동안, 나도 내게 맞는 뭔가를 열심히 찾아봐야지(좋아하는 것이든, 잘하는 것이든). 그래서 1년 뒤에 다시 만났을 때 그동안 각자가 경험한 새로운 것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그에 대해 서로 축하하고 응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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