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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Sep 16. 2022

고향 시골집에서 보낸 추석

7살 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이후 추석과 설 명절은 항상 서울 우리집에서 보냈다. 우리 아빠가 큰 아들이어서 차례상은 우리집에 차렸고, 온 가족이 시골로 이동하는 대신 할머니가 서울로 올라오셨다.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외에 다른 친척집에 찾아간 적은 없었고, 고모네를 제외하고는 딱히 찾아오는 친척도 없어서, 결혼하기 전까지 명절 연휴는 그야말로 긴 휴식시간이었다. 결혼한 이후에도 명절에 맞춰 양가를 번갈아 찾기는 했지만, 가족끼리 밥 몇끼를 먹는 일이었고, 한 번도 명절에 고향을 내려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추석은 꼭 고향 시골집에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 겨울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에 아직 외할머니가 정정하실 때 가능한 자주 찾아뵈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터였다. 그래서 올여름 전후로 외할머니를 두 번 찾아뵈었는데, 코로나 후유증으로 눈에 띄게 쇠약해지셔서 영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24살에 시집 온 이후, 친정이 같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명절을 친정집에서 보내지 못한 엄마가 엄마의 형제들과 다같이 명절을 보내는 경험을 했으면 싶었다. 언젠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엄마의 형제들도 더 이상 명절에 다같이 모이지 않게 될 것이다. 나중으로 미루지말고, 아직 외할머니가 정정하신 이번 추석을 시골에서 보내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에 더하여 우리 아이들에게도 친척이 다같이 모여 북적북적이는 명절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고(특히 나이 어린 또래의 친척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항상 여름과 겨울에만 시골을 방문했기에 이번 기회에 황금빛 가을들판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산책길에 일부러 외갓집을 들렀는데, 아침부터 굽은 허리로 밭에서 녹두를 따고 계신 외할머니를 만나 서로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 추석을 시골에서 보내는 건 나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어서 엄마 아빠에게 '올해 추석은 시골에서 보내면 어떨지' 운을 띄워보았는데, 우려와 달리 두분 다 순순히 동의하셨다. 나는 우리집의 성공한 첫째니까 나름 발언력이 있어서 쉽게 통과된 것인가 추측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엄마 아빠는 시골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면 손주들을 더 오래 볼 수 있어서 (오가는데 오래 걸려서 1박 2일로 갔다오기는 힘드니 최소 2박 3일을 잡고 가니까) 흔쾌히 동의한 것 같기하다. 


살면서 추석 연휴에 어딘가를 가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길이 막히는지, 길 막히는 시간을 피하려면 언제 이동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 딴에는 새벽 일찍 출발하면 덜 막히지 않을까 싶어서, 추석연휴 첫날 나름대로 빠른 시간인 새벽 5시 30분에 출발했는데, 도착까지 무려 8시간이 걸렸다. 광명에서 출발해 3시간을 달렸는데 아직 평택인 그런 상황. 북대전에 진입해서 남대전을 빠져나가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만석이어서 앉을 자리가 없어 아침식사는 간식으로 적당히 떼우고, 화장실도 줄서서 들어갈 정도였다. 너무 오래 걸려 힘들긴 했지만, 티맵의 안내에 따라 몰랐던 지역의 국도도 지나고, 커다란 댐 주변의 멋지고 꼬불꼬불한 길도 지나고, 중간에 남편과 운전자를 교체하기도 하며 드디어 시골집에 도착했다.


시골집에서 보낸 추석 연휴는 생각 이상으로 참 좋았다.

마당에서 놀기 위해 비눗방울, 그립볼, 줄넘기, 딱지 등을 챙겨갔는데, 계획했던 것보다 더 다양하고 즐거운 활동을 했다.

- 엄마는 자신의 형제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오래 담소를 나누었다. 엄마에게는 한 명의 오빠와 네 명의 남동생이 있다. 즉 나에게는 다섯 명의 외삼촌이 있고, 모처럼 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 아이들은 어린 친척들과 공기놀이, 윷놀이를 했다. 내게는 10살, 13살, 14살의 어린 사촌동생들이 있는데, 아이들은 이 아이들을 이모라고 불렀다가 누나라고 불렀다가 관계를 헷갈려하면서도 모처럼 만난 또래 친척들을 참 좋아했다.

- 나는 시골에서 두번의 아침을 맞이했는데, 엄마 아빠보다 일찍 일어나서 한번은 홀로 달리기를 했고, 한번은 홀로 산책을 했다.

- 시골집은 마당이 있어서 밖에서 놀기 좋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비눗방울, 그립볼, 줄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 등을 하며 놀았다.

- 사촌동생(고모딸)도 시골집에 잠시 방문해서 아이들과 그립볼을 하고, 동네 산책을 함께 했다.

- 마당 한쪽에 불을 피워 불멍도 하고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 동네 길가에 핀 봉숭아꽃을 따서 딸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주었다.

- 엄마, 아빠, 동생 부부, 남동생, 우리 가족들이 함께 정령치 휴게소에 가서 남원과 운봉을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차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가 휴게소에 주차하고 구경을 잠깐 하고, 간식을 엄청 먹고 돌아왔다.

- 나의 형제들과 남편과 인월읍에 있는 도보책방에 가서 책 구경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 아이들과 엄마 아빠를 빼고 우리 항렬들끼리 오붓하고 조용하게 보내는 시간이었다.

- 집에 있는 전기 삼륜차를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며 오픈카 타고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을 냈다.

- 세대별 음악 퀴즈를 했다. 엄마 아빠에게는 70년대 유행곡, 남편과 여동생에게는 2000년대 유행곡, 남동생과 제부에게는 2010년대 유행곡을 각각 5곡씩 틀어주고 빨리 맞추는 게임이었는데 호응이 좋아 기분이 좋았다. (지구오락실에서 영감을 받음)

- 마당 한켠에서 지리산 흑돼지를 구워먹었다.

- 엄마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최대한 많이 먹었다. 엄마에게 다음에는 음식 종류를 줄이거나 양을 줄이라고 또 잔소리를 하고 말았지만, 맛있다는 말도 많이 했다. 가장 맛있었던 것은 우리 밭에서 일군 파, 고구마순, 어린 열무로 갓 만든 김치 3종 세트였다. 참 푸릇푸릇한 맛이었다.

- 이런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시골에 가느라 오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정말 꽉찬 2박 3일이었고, 나도 만족하고 가족들도 즐거워했던, 특히 엄마에게 형제들과의 시간을 선물한 기분이어서 더 뿌듯했던 추석이었다.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의 삶은 어떨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마침 고향집 바로 옆에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데, 시골로 내려가서 둘레길 탐방객에게 방 한 칸을 빌려주고, 소일거리로 유료 전화상담도 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일구어 간소하게 먹고, 아침으로 달리기를 하고 저녁으로 글을 쓰며, 소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상상해보았다. 곧바로 여러 방해 요소들이 동시에 떠오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직 상상이니까. 상상은 내 마음이니까 마음대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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