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올린 글이 무색하게도, 나는 또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방광염 증상이 나타났고 입술에 수포까지 생겼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 염증 수치가 최대치로 나왔다며 약을 추가로 4일치를 더 주셨다.
꽤 신경 쓰이는 사건의 서면을 지난주 월요일까지 써야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주말에도 짬을 내서 일을 하며 바쁘게 지내다 간신히 기한 내에 서면을 마친 직후였다. 나는 한창 바쁠 때는 아프지 않다가, 긴장이 풀어지고 안도감이 찾아오면 그 때 비로소 아프다. 직장생활 첫 해에 부장님의 은혜로 간신히 얻은 첫 여름휴가 때(동기 5명 중 3명은 아예 여름휴가가 없었다), 휴가 전날 야근까지 하며 업무를 일단락한 후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열이 펄펄 끓었다. 상반기 내내 긴장하고 있던 몸과 마음이 휴가로 풀어지면서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고, 그래서 다음날 깨끗이 나았다.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다음날 깨끗이 낫지 않아 병원에서 처방받은 대로 일주일째 항생제를 먹고 있다. 스트레스를 마음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몸이 아프고 나서야 인식하는 스스로를 보며, 검찰에 계속 있었다면 크게 아팠을 텐데 나를 괴롭혔던 부장님 덕분에 중도하차한 것이 결국 나를 살린 것이라 생각하며 안도한다.
'업무는 이제 나의 1순위가 아니다'라고 주문을 되뇌지만, 오랜 세월 일을 1순위로 놓고 지내온 터라, 이런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업무로 기울어지면 다시 제자리로 균형을 찾는 데에 시간이 좀 필요하다.
다행히 주말에 친구들, 가족들과 좋은 날씨에 야외 활동을 하며 조금씩 균형감을 회복했고, 오늘 비로소 아이 등원 후 반찬을 사러 가는 길에 짧은 산책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 주에도 같은 코스로 반찬을 사러 갔지만, 업무로 마음이 바빠 쫓기듯이 빠르게 걷던 그 길이다.
꽃이 활짝 피어난 모습도 예쁘지만, 피어나기 직전 꽃망울이 터질 듯 부풀어 있는 모습에 품게 되는 기대감도 좋아한다.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만물에 에너지가 가득하고 햇볕이 좋은 봄이다. 이런 좋은 봄날, 해야 할 일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산책에만 오롯이 집중하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그래서 오늘의 산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