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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Apr 25. 2023

동네 주민이 되어 간다

화요일.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들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관련된 사람에게서 오는 전화는 항상 나를 긴장시킨다. 하던 일을 멈추고 급하게 전화를 받았더니 경쾌한 목소리로 "두릅 먹어요? 먹을 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라고 물으신다. 두릅, 아주 좋아한다. 냉큼 잘 먹는다고 대답을 했다. 전화를 끊고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가서 두릅 한 움큼을 받아 왔다. 친정어머니께서 갓 따신 두릅인데, 너무 연하고 좋아 팔기 아까워서 딸에게 보낸 것이라고 한다. 그런 귀한 것을 나눠주시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덥석 받았다. 소박한 답례로 내 고향 남원의 특산품 김부각 두 봉지를 드렸다. 외삼촌의 친구분이 하는 공장에서 만든 것이니 공산품이긴 하지만 '근본 있는(?) 공산품'이다. 두릅을 잘 먹기는 하지만 요리해 본 적이 없어 인터넷에 데치는 방법을 검색해 보았다. 뿌리 부분을 잘라내며 겉껍질을 떼어내고 끓는 물에 1분 내외로 데친 후 찬물로 헹구면 된다. 쉽다. 바로 한 끼 먹을 만큼만 데쳐서 그날의 메뉴인 고등어구이와 계란찜과 함께 먹었다. 초장이 없어 쌈장을 찍어 먹었다. 정말로 연하고 부드러웠고, 쌉쌀한 맛이 일품이었다.


손질 후 물에 잠시 담궈두었다. 싱싱하고 질감은 연하고 맛은 진하다.


수요일 오전. 옆단지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가 쌈채소를 좋아하냐며 카톡을 보내왔다. 자기는 상추만 먹는데, 쌈채소가 선물로 들어왔다고 한다. 쌈채소, 완전 좋아한다. 마침 선물받은 두릅도 있으니 점심에 같이 고기를 구워 먹자며 친구를 불렀다. 친구가 사 온 목살을 프라이팬에 잘 굽고(나는 돼지고기를 잘 굽는다), 데친 두릅에 각종 쌈채소를 곁들여 흰쌀밥과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수요일 저녁. 내가 조직한 독서모임 회원 중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이 "시어머니가 김치를 많이 주셨는데, 필요하면 좀 나눠드릴까요"라고 카톡을 주셨다. 또 덥석 냉큼 감사하다고 답을 했다. 답례로 남원 운봉 특산품 김부각을 조금 드리고 김치를 받아왔는데, 김치가 한 종류가 아니라 다섯가지 되다. 무말랭이, 부추김치, 오이소박이, 얼갈이김치, 알타리김치. 밥상이 화려해졌다.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나눔받은 김치 5종


불과 이틀 사이에 두릅, 쌈채소, 김치 5종을 각계각층의 동네사람들로부터 나눔을 받으니, "내가 진짜 이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토요일. 우리 둘째가 좋아하는 동네 언니가 두발 자전거를 막 시작하고 있길래 내 장기(자전거 타기를 잘 가르친다)를 살려 자전거 시작하는 방법을 좀 알려주었더니 아이의 부모님께서 커피를 갖다 주셨다. 이 부모님은 동네에서 까페를 운영하는데, 그 까페에서 내가 자주 마셨던 그 메뉴(따뜻한 오트라떼, 덜 달게)를 정확하게 만들어다 주셨다.


이 동네에 산지 4년이 조금 넘었는데, 올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비로소 이런저런 유대관계가 싹트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천천히' 유대감을 형성해가는 것. 꽤나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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