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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May 27. 2023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달라진 것들

올해 들어 일하는 시간을 줄이,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재판에 출석하거나 대면회의가 필요한 경우에만 출근(외근)을 하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달라진 우리집 풍경 몇가지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결혼 10년을 함께 한 반려식물 싱고니움의 새순들.

10년 전 결혼할 때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나는 강릉에서 관사에 살았고, 남편은 서울에서 신혼집으로 원룸을 구했다. 당시 우리의 절친한 대학동기가 남편집에 방문하면서 결혼 및 독립 기념 선물로 사다준 싱고니움.

우리 부부 둘 다 화분을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싱고니움에게 고생을 많이 시켰다. 신혼여행으로 집을 일주일 동안 비우면서 햇빛을 충분히 받으라고 창틀에 올려놓고 갔더니, 싱고니움 잎이 온통 흰색으로 변하는 고초도 겪게 했고(나중에 알고 보니 직사광선을 싫어한단다. 식물은 무조건 해를 좋아하는줄 알았다.) 햇빛이 잘 안 드는 비좁은 선반에 오래 뒀더니 잎이 앙상해지고 웃자라며 이파리가 서너장밖에 안남기도 했다.


베란다 음지 선반에 두었던 싱고늄을 거실 햇빛 잘 드는 곳으로 옮기고, 많이 웃자라 휘청거리는 줄기들은 잘라 정리해주고, 흙을 보충해주고, 화분 상태를 자주 체크하면서 물을 잘 챙겨줬더니, 싱고니움은 최근 들어 새순을 마구 뿜어 올리고 있다. 흙을 뚫고 올라오는 작고 싱그러운 싱고니움 새순을 보면 참 기특하고, 괜스레 뿌듯해진다.


새순이 올라오고 잎이 무성해지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거실에서 소파를 없앤 것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용하던 청소도우미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오히려 전보다 청소를 더 자주 하게 되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거실에 매트를 깔아 두었는데, 가끔은 거실 매트를 걷어내고 청소를 하기도 한다. 어느 날 거실 청소를 하다가 소파 밑을 청소하기가 참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 밑 먼지를 쌓아두고 싶지 않아 일부러 다리가 있는 소파를 골랐는데도, 청소기 각도를 잘 조절하지 않으면 자꾸 청소기 밀대가 소파에 걸리곤 해 영 번거로웠다. 번거로우면 손이 가지 않게 된다. 거실을 청소하면서 번거로워 소파 밑을 모른 척 그냥 지나치면 청소를 했는데도 개운하지 못하고 마음이 찝찝했다. 마침 남편이 어른용 1인 의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몇 번 해서(남편은 소파를 두고 1인용 의자를 추가로 들이자는 얘기였지만), 소파를 비우 대신 혼자서도 이리저리 옮기기 쉬운 1인용 의자를 두기로 했다. 소파를 비우니 거실이 훨씬 넓어졌고, 청소할 때는 의자를 번쩍 들어 다른 곳에 옮긴 후 편하게 청소를 하게 되어 대만족 중이다.


매트를 걷고 개운하게 청소를 한다.
가족 4명에 의자 2개여도 별로 부족함은 없다.

원래 있던 소파는 아이들이 소파를 더럽힐 것을 예상해 버를 분리해서 세탁할 수 있는 패브릭 소파였다. 아이들이 커서 소파에 뭘 흘리지 않는 날이 오면 크고 멋진 제대로 된 통통한 가죽 소파를 사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도 통통한 가죽 소파는 사지 않게 될 것 같다. 가벼운 패브릭 소파도 3인용이라 무게와 크기가 제법 되었고, 처분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둘이 끙끙대며 밖으로 옮겼다. 무겁고 처분하기 어려운 가구 대신 옮기기 쉬운 가벼운 가구가 주는 유연성에서 얻는 만족감이 꽤 크다.    


세 번째 변화는 설거지를 쌓아두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집안일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설거지만큼은 정말 싫어한다. 싫어해서 자꾸 미루다 보니 개수대에 설거지 거리가 쌓이곤 했다. 설거지는 신기하게도 양이 두 배로 늘어나면 시간은 두 배가 아닌 세네 배로 늘어난다. 또 비교적 깨끗한 그릇 위에 더러운(기름기 많은) 그릇이 쌓이면서 개수대 안의 모든 그릇이 더러워지는 참사가 종종 일어난다. 개수대에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으면, 짜파게티를 끓이는 과정에서 기름기 많은 면수를 버리다가 개수대 안에 있던 모든 그릇에 짜파게티 기름기가 범벅이 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곤 하는 것이다.

설거지가 너무 싫어 식기세척기를 들였는데도, 식기세척기에 넣기 전에 해야 할 초벌설거지를 미루곤 했다.


우리 집에는 저녁을 먹은 이후 1시간 동안 자유롭게 티비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애들이 엄마를 찾지 않고 노는 이 소중한 시간의 대부분을 설거지를 하며 보내다 보니 울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엄마에게 화가 쌓이는 것은 가족에게 좋지 않다. 화가 쌓여 있으면 사소한 일로 분노가 폭발하곤 한다. 그래서 화를 쌓아두지 않기 위해 가족들에게 각자 먹은 그릇의 초벌 설거지를 시키기로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식사 직후 각자가 사용한 밥그릇, 접시, 수저를 씻어서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요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설거지 거리는 내 담당이고, 상을 차리기 전에 빨리 해버린다. 음식물이 말라붙기 전에 열기가 남아 있을 때 설거지하면 빠르고 편하게 씻겨서 설거지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된다. 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밤에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아침에 식기를 그릇장으로 돌려놓아, 남편과 아이들이 초벌설거지를 곧바로 넣을 수 있도록 식기세척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왼쪽의 상태를 유지하며, 가족 모두에게 설거지를 분배한다.

지난 시간 동안은 왼쪽 사진의 상태를 유지할 여유가 없어서 일단 쌓아두다가 더는 설거지를 미룰 수 없을 때가 되서야 혼자 뒷감당을 했는데, 이제는 가족에게 설거지를 분배하기 위해 부지런을 떨 여유가 생겼다.


설거지를 쌓아두지 않게 되면서, 저녁식사 이후에 나도 뒷정리만 빨리 한 후 놀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각자의 시간 이후 잠들 때까지 사이에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빈도가 엄청 줄었다.


적어놓고 보니 엄청 사소하지만, 시간이 생겨서 가능한 변화였기에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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