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 동안 아침형인간, 미라클모닝 관련 책을 탐독하고 새벽기상을 목표로 삼을 때는 무슨 수를 써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는데, 절로 일찍 눈이 떠지다니 신기했다.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뀌어서 아침잠이 없어진 건가, 이러다 50대 60대가 되면 새벽 3~4시에 깨게 되는 건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침에 잠이 빨리 깨는 이유. 눈 뜨자마자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이유. 간밤에 잘 자서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시절보다 요즘 잘 자는 이유는 무엇인가. 잠을 방해하는 요소가 줄어서 그런 것이다.
우선 내 통잠을 방해하던 아이들의 잠버릇에서 해방되었다. 아들은 따로 자고, 가끔 새벽에 깨면 내게 와서 함께 자는데 그 횟수가 엄청 줄었다. 딸은 밤에 자다 깨서 목이 마르다며 물을 달라 보채고 물을 새 모이만큼 마신 후(정말 목만 축인 후) 다시 잠드는 잠버릇이 있었는데(이때 귀찮아서 못들은 척하며 물을 안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이제는 자다가 목이 마르면 혼자서 일어나 정수기에 가서 물을 마시고 돌아오는 어린이로 성장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머릿속을 떠다니던 업무로 인한 괴로운 생각들이 많이 줄었다. 업무량이 줄어든 덕택이기도 하지만, 몇달 전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알랭드보통 - 불안)에서 본 문구 덕이 크다.
폐허는 우리의 노력을, 완전과 완성이라는 이미지를 버리라고 한다. (중략) 이런 소멸의 전망에 위로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의 불안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기획과 관심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 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불안(=걱정)의 많은 부분이 (나 자신의) 기획과 관심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완전과 완성이라는 이미지를 버리라"는 문장과 대부분의 것은 언젠가 소멸한다는 메시지는 업무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며 스스로가 만든 굴레에 갇혀 힘들어 죽겠다고 피로감을 호소하던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사건의 결론, 사건 진행과정에서 의뢰인에게 일어나는 일, 의뢰인과 그 가족들의 스트레스,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일 등)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고 나는 그냥 내가 해야 할 몫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내 다짐대로 안되는, 자꾸마음이 쓰이는 일들이 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그런 마음 쓰이는 일이 이십가지였다면, 지금은 서너가지에 불과하다. 그 결과 예전보다 밤에 잠이 잘 오고, 깊이 잔다. 과거의 내가 아침형인간, 미라클모닝을 실행할 수 없었던 것은, 나태하고 게으른 인간이어서가 아니라그때많이 지치고 힘들어서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새벽기상에 여러번 실패한 분들은 스스로를 탓하지 마시길)
잘 잔 덕분에 일찍 눈이 떠지는 아침에는 소소하고 즐거운 활동을 한다. 일찍 일어났으니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을 때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좋아하는 가벼운 활동을 한다.
일어나자마자 거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물과 함께 영양제를 먹은 후 식기세척기에서 밤새 마른 그릇을 그릇장으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산책을 나간다. 산책도 그리 길게 하지 않는다. 그날의 날씨, 계절의 변화, 공원 식생의 변화를 느끼며 기분 좋을 정도로만 가볍게 걷는다. 부담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기 때문에, 잠이 깼을 때 '조금만 더'라고 침대에서 뭉개지 않고 바로 일어나게 되는 것 같다.
평소와 달리 집 옆 공원을 벗어나 천변까지 나가 걸은 아침에 찍은 사진이다. 이렇게 멀리 가는 날도 있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만 걷는 날도 있다. 그날 그날 내가 걷고 싶은 장소에서 걷고 싶은 만큼만 걷는다. 이것이 요즘 내 삶의 지향점이다. 그 덕분에 밤에 잘 자고, 아침에 저절로 빨리 잠이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