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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유학 준비 - 관심 가는 초등학교 탐방

by 시간부자

작년 연말에 농촌유학이라는 제도를 처음 알게 되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민하는 시간을 거쳐 내년에는 농촌유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단, 내가 마음 먹는다고 무조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11월에 교육청에서 공고가 나면, 지원을 하고, 면접 등 절차를 거쳐 선발되어야 한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학교는 임실의 ㅈ초등학교와 순천의 ㅇ초등학교다. 정이 전주이기 때문에 전라북도 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위주로 알아보고 있다. 관심을 두고 있는 초등학교들은 거주지와 학교가 가까워서 걸어서 통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고(매일 내가 차로 등하교를 시키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다), 남원역에서 차로 30분 이내 거리라서 주말에 오고 갈 남편 마중과 배웅이 편할 것 같다.



이번 추석 연휴 때 전주 친정에 내려갔다가 임실 호국원에 방문하게 되었다. 6.25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가 올해 초 뒤늦게 호국원에 이장되었고, 그 후 맞이하는 첫 명절이니 전주에 내려온 김에 다 같이 호국원에 가보자 하여 흔쾌히 따라나섰다.

호국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물었다.

"이왕 임실까지 가는 김에 농촌유학 후보지인 ㅈ초등학교를 한 번 보고 가는 게 어때?"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깜짝 놀라 내가 대답했다.

"너무 좋은 생각이야!!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렇게 임실호국원에 들렀다가 ㅈ초등학교로 가게 되었다.


이처럼 남편은 나의 농촌유학 결정을 적극 지지하고, 농촌유학에 대한 내 열정이 사그라들거나 주저하는 낌새를 보이면 옆에서 불을 지피며 응원을 보낸다. 아무래도 가족들을 내려 보내고 자 호젓하게 지낼 생각에 신나는 것 같다. 편은 "혼자 지내게 되는 것은 전혀 기쁘지 않다."라고 극구 부인하며 "벌써 쓸쓸하다."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그의 입꼬리에 번지는 미소는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다.


지도를 보니 임실호국원은 임실의 서쪽이고, ㅈ초등학교는 임실의 동쪽이다. 차로 30분 정도 거리라 아주 멀지는 않았고, 임실군 중심부를 지나야 하는 코스다. 초등학교에서 임실군 중심부까지는 차로 15분 정도니 종종 나올 일이 있을 것이다. 학교로 가는 길에 군내에 어떤 편의시설이 있는지 생활 여건도 확인할 수 있어서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임실 중심부를 지나는데 차가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서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마침 그날이 임실치즈축제 첫째 날이었는데, 우리는 축제장에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길을 지나가야 할 뿐이었는데도 정체에 갇혀 꼼짝도 못 했다. 나중에 뉴스에서 보니 축제 방문 차량은 3시간 동안 정체에 갇혀 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소에 인파, 통 체증에 질색하는 사람이라, 이것 때문에 임실의 첫인상은 금 실망스러웠다.


300m만 지나서 좌회전하면 되는데 차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도대체 왜 차들이 안 움직이는 것인지 이유도 모르겠어서 답답한데, 뒷자리 아이들은 눈치 없이 서로 시비를 걸다가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답답함과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쯤 드디어 좌회전하기 직전 지점에서 교통 정리하는 분 앞까지 가게 되었다.


교통 정리하는 분은 차량마다 행선지를 묻고 꼭 좌회전하지 않아도 되는 차들에게는 우회전 또는 직진으로 우회를 유도하고 있었다. 그분은 우리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고, 우리는 ㅈ초등학교에 간다고 대답했더니 그분의 답이 걸작이었다.

"(잠시 침묵) ㅈ초등학교면 천상 가야지 별 수 없구먼요."


그렇게 우리는 천상 좌회전을 하는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좌회전 이후로는 길이 곧 뚫려 해질녘 어스름해지는 시간에 ㅈ초등학교에 도착하게 되었다.



학교의 첫인상은 너무 근사했다. 동장이 풀밭이었고, 낮은 학교 건물 뒤로 멀리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었다. 학교는 마을 입구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바로 앞에는 논과 밭이 있었고, 옆쪽으로 소박한 동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학교 주차장 한쪽에 스쿨버스가 있었고, 학교 운동장을 둘러서 우레탄 트랙이 있었다. 이 트랙에서 슬로우 러닝 연습을 하면 되겠는데? 벌써 내년 생활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설레발을 치게 만드는 정겹고 멋진 광경이었다.

둘째는 운동장 한쪽에 놀이터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특히 자기 키에 맞는 철봉 아주 흡족해한다. 농촌유학 가족에게 제공되는 집이 학교와 걸어서 5분 거리여서 너무 좋단다. 늦잠을 자도 지각할 걱정이 없다나. 어쨌든 둘째도 나처럼 내년 생활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다. 와보길 잘했다.



반면에 첫째는 동네 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학교 외곽 소나무 밑에서 꾸물거리는 송충이들이 무서워서 땅에 발을 딛지 못한다. 외할머니(우리 엄마) 팔다리에 매달려서 울다시피 절규하며 걸어오는 아들을 보며, 함께 방문한 외할아버지(우리 아빠)와 외삼촌(내 남동생)이 한 마디씩 한다.

"송충이 때문에 농촌유학 안 되겠는데?"


사실 농촌유학을 혼자 머릿속에 그려보고 상상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다름 아닌 벌레였다. 가끔씩 밤에 잠들기 전에 "벌레를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주세요."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종교는 없지만 기도가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는 벌레 따위 하며 웃음 지을 일이지만, 우리 집 4인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막내가 유치원에서 받아 온 장수풍뎅이를 맨 손으로 만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큰 일이다. 애벌레 상태인 장수풍뎅이가 부화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기도가 부족했는지 결국 성체가 된 장수풍뎅이를 케이지로 옮기고, 먹이를 주고, 죽은 후 땅에 묻어주며 첫째는 울기까지 했는데, 아무도 그 벌레를 만질 수 없어서 종이나 휴지 등이 동원되었다. 농촌유학을 가게 되면, 어디로 가든 벌레가 도시에 비해 엄청 많을 것이다. 남편은 함께 생활하지 않으니 어른인 내가 벌레를 상대해야 한다. 부디 벌레를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장착하고 농촌유학에 최종 선발되기를 바라며 임실에서 전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임실에서 전주로 돌아오는 길 임실치즈축제가 끝나 귀가하는 차량들로 또 한참 막혔다. 나중에 농촌유학을 임실로 가게 된다면, 치즈축제 기간에는 동네에서 꼼짝 않고 머물겠다는 현실적인 다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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