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솔직히 말하면 호랑이띠에 대한 편견이 있다(호랑이띠 여러분 죄송합니다). 혈액형 분류도, 띠별 특성도, MBTI 구분도 그리 믿는 편은 아니지만, 호랑이띠에 대한 편견은 경험으로부터 온 편향된 일반화로 굳어버렸다. 그래서 호랑이띠를 만나면 먼저 멈칫하고 굳어버린다. (경험의 한계는 무서운 것이다!)
언니가 없고 나만 졸졸 따라다니던 여동생이 있는 나는, 언니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뭐든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먼저 경험하고 앞서 나간 언니들! 무조건 멋있어 보였다. 대학원을 다닐 때 우연히 친하게 된 호랑이띠 언니들은 내게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멋진 언니들인데, 게다가 용맹한 호랑이띠라니! 요즘 말하는 쎈언니들 아닌가. 앞장서서 많은 일을 해치우고 동생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주는 그런 언니, 그렇게 멋있는 언니가 내게 생긴 것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다. 따라갈 수 없는 언니들의 주량! 흉내 낼 수 없는 언니들의 개그! 이해하기 힘들 만큼 현학적인 언니들의 말투! 감히 비슷해지고 싶지도 않았던 언니들의 패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할 때부터 밝히던 호랑이띠의 기백! 나는 기가 죽어 졸졸 따라다녔다. 언니들에게 다 배우고 싶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항상 기대했다.
문제는 언니들이 셀 수 없이 싸운다는 것이었다. 용맹한 기백으로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심심하면 나에게 시비를 걸어서 싸우고, 그러다가 재미없으면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싸움을 걸었다. 혈기 왕성한 시기였고 토론할 주제도 무궁무진했고 모두가 이기고 싶어 했다. 그런 에너지에 놀라서 주춤했다가도 처음에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상처만 쌓여가게 되었다. 언니들은 연애마저도 전투적이었다. 나는 도저히 그런 언니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언니들은 결별의 방식마저도 극단적이었다. 일단 먼저 자기들끼리 싸우다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나에게 와서 하소연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주의 기운을 모두 모아서 평생 만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절연했다. 서로 맞지 않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되도록이면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을 선호하는 나로선 언니들의 방식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언니들은 그리움과 외로움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지나간 버린 친구들을 추억하다가 돌연 나에게도 절연을 선언하고 떠나버렸다. 나이가 들면 서로의 생활 반경이 달라지면서 서서히 멀어지게 마련인 관계를 안타까워하는 방식에 익숙했던 나로선 그런 식의 기백(?!)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언니들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마 너는 아직 잘 모를 거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동생의 자리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언니의 자리에서 오는 책임감에만 신경 쓰고 언니가 없는 것만 아쉬워하다 보니, 동생의 자리에서 느낄 소외감과 무시당하는 느낌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니들의 그 말을 듣고 나서, 그 말을 계속 곱씹을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무수한 동생들의 얼굴이 겹쳐서 보였다. 상하관계에 대한 생래적 내면화와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오는 그에 대한 거부감이 그들의 얼굴에 종종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그동안 내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대충 그 이후였을 것 같다. 친구가 된 사람들의 나이를 물어보지 않게 되었던 것은. 혹시 알게 되더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던 것도. 그리고 더 이상 언니와 동생의 관계에도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뿐 아니라 다른 것들은 관계에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마음이 통하면 그뿐이었다.
초콜릿 책방의 독서모임, "위태로운 북클럽"에서의 불문율은 서로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이다. 물론 궁금한 사람들은 서로 조용히 물어보기도 하고 대충 짐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로 암묵적인 위계를 세우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 되어 있다. 서로의 취향과 마음을 나누는데 그런 것은 걸림돌만 될 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우리 모임이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풍부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좀 더 격렬하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를 위계적 편견을 거부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진 호랑이띠에 대한 편견은 이런 것이었다.
꼰대=호랑이띠.
이제 이런 편견과도 결별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호랑이해에는 호랑이띠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자! 나의 올해 목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