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책방 이야기
- "초콜릿"이 있는 책방입니다.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초콜릿 책방에서 종종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초콜릿"도 있냐는 것이다. 그러면 잠시 갸우뚱하다가, 이내 무늬만 초콜릿을 두른 그냥 "책방"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는 초콜릿이 없는 초콜릿 책방을 상상하게 된다. ㅊㅊ 똑같은 자음으로 시작하는, 달콤한 느낌이 연상되는 책방이라면..., 그냥 책방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초콜릿 책방에 초콜릿이 없어도 전혀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이곳에서는 초콜릿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열람용 서가 한쪽은 초콜릿 관련 서적으로 꽉 채워두었다.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책방을 열기 전에 초콜릿 전문 카페를 운영했었다. 이미 초콜릿 관련 일을 하고 있던 동생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같이 카페를 열어볼까 하는 식의 시답잖은 계획을 세우다가, 어느 순간 초콜릿 전문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주인공 한 번 하고 싶었어요...)


문학 전공자에, 카페 아르바이트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던 상태로 시작했던 일이라서 일단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하기만 했다. 초콜릿은 너무나 섬세하고 예민한 재료라서 언제나 신경이 곤두선 채로 만들었고, 더 맛있고 더 예쁘고 더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온종일 초콜릿 생각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초콜릿 관련 서적 말고는) 책을 한 줄도 읽고 있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런 생활을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원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잊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카페는 이미 자리를 잡아서 수입은 꽤 괜찮았지만, 나를 잃어가면서 지속해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카페 운영을 동생에게 모두 넘기고 그만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한동안 많이 아프고 우울했다. 그 시기에 우연히 맡게 된 번역 교정 책이 "인생의 의미"에 관한 것이라서 일하면서 많이 울기도 했다. 몇 달 동안 꼬박 10시간씩 앉아서 번역 교정 일을 하면서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에 대해서.


책방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불현듯 떠올랐다기보다는, 오랫동안 나를 들여다보고 고민해보면서 생각한 것이었다. 과거의 나와 절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서인지, 처음 책방을 준비할 때는 초콜릿을 판매할 계획이 없었다. 오로지 책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니는 부동산마다, 혹은 계획을 들은 모든 지인마다 하나같이 안타까워했다. 초콜릿을 만드는 기술을 그냥 버리려고 하는 것을 말이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거의 나와 절연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부정해버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방을 준비하면서 좀 더 차분하게 나와 책방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굴곡 없는 인생이 없듯 마냥 달콤한 맛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초콜릿"을 내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껴안아버리니까 오히려 좀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초콜릿 책방에서 초콜릿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책과 함께 끊임없이 연구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빼빼로 데이를 앞두고 매일 여러 종류의 초콜릿을 템퍼링 하고 디핑을 하고 완성해가면서, 새삼 책방을 열기 위해 고민하던 시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책과 초콜릿 사이에서 항상 줄다리기하는 느낌이지만, 초콜릿을 껴안고 오지 않았다면 나의 일부가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즐겁게 책을 읽다가 초콜릿을 떠올리고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 좋다. 그런 순간이 없다면 약간은 더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 같다. (초콜릿 만드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턱대고 달콤 쌉쌀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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