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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pr 19. 202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열정이 때로는 도그마가 되기도 한다

    제목만 보고는 과학과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 때 저명했던 사람에 관한 논픽션이다. 논픽션과 에세이의 만남이 자연스러워서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한 인간의 생이 녹아있고 반전까지 있으니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서 읽기에도 충분히 좋은 책인 것 같다. 


   지구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의 생애와 룰루 밀러라는 저자의 삶이 교차되면서 매력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룰루 밀러는 어릴 적 아버지가 던진 말, ‘너는 중요하지 않아’로 인해 혼돈의 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면서 데이비드의 일생에 대해 좇는다. 


    생에 대해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지나간 불운에 대해 절대 근심하지 않는 데이비드는 전능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수많은 물고기들에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주면서 끝없이 자기 삶의 의미를 확인한다. 그가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존재에 대한 확인이 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름을 잘못 붙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름이 없어도 실재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잊게 만든다. 새롭게 발견한 종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 그것은 태초의 신이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전능함의 실현이다. 그러므로 데이비드는 자신의 존재 혹은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수집을 하고 명명을 하지만 세계는 혼돈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한때는 짧을 글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대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라고 말을 한 적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우주 앞에서 무력한 인간이라는 개념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개념을 받아들이면 의미는 남지 않고 쉽게 무너지게 될 수 있으므로. 절망 뒤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단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므로. 


   그러므로 그는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기만의 연금술”에 빠져들어서,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고 믿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는 더 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더욱 비극적이면서 나쁜 형태인 우생학으로 변질되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우생학은 단순한 상대성 원칙도 고려하지 않고 다양성을 제거하려 하는 것인데, 데이비드는 우리가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너는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 혹은 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기만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룰루 밀러는 이렇게 말한다. 222쪽.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우리는 작은 티끌들, 깜빡거리듯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가진 관점은 무수히 많은 관점 중 하나이며,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나와 다른 타자를 쉽게 짓밟을 수 있는 우생학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250쪽.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나는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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