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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y 27. 2022

<사랑에 빠지기>

사랑에 빠진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만 가지 독백


   출판사를 다니는 마리아 돌즈라는 주인공은 아침마다 가는 카페에서 보게 된 한 부부에게 호감을 느낀다. 부부는 서로에게 항상 다정하고 함께 있을 때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서 마리아가 볼 때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옆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서, 마리아는 카페에 갈 때마다 멀리서 지켜보면서 혼자 그들의 관계를 더 상상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부의 남편인 데베르네가 길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루이자라는 부인 혼자 남게 된다. 마리아는 카페에서 루이자를 다시 만났을 때 조의를 표하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루이자의 집까지 가게 된다. 그녀의 집에서 하비에르라는 남자를 만난 마리아는 그에게 사랑에 빠지고, 하비에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만남을 지속한다. 그러다 하비에르가 데베르네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유가 루이자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마리아는 하비에르를 단죄하는 것을 망설이다 내버려 두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하비에르는 루이자와 결혼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매우 단순한 이야기다. 사건이 확장되는 법도 없고 극적인 면도 없다. 극적인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이 소설을 추천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작가인 하비에르 마리나스는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사건은 단순하고 그 사건이 인간 내부에 일으키는 반향이나 수없이 뻗어나가는 생각들에 초점을 둔다.
 
   소설이라는 것은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들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사랑에 빠지기”라는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마리아의 입을 빌려서 길고 장황한 독백과 관찰이 이루어진다. 관찰 또한 전적으로 마리아의 관점이며, 상대의 말 또한 마리아의 귀를 통해 들여온 것이다. 그렇다면 마리아라는 한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체계, 혹은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자신을 둘러싼 일들을 개념화하고 정리해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는 대체로 생각이 많아지고 그 무수한 생각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도 하나의 길을 향해 돌진하는 경향이 있다. 그 생각들은 감정의 과잉일 때도 있고 나름 논리적일 때도 있다. 마리아는 그런 사랑에 빠진 상태를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이 마리아에게 공감할 수 있거나 동의하는 문제는 다른 영역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져서 횡설수설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냉정해질 때가 있는데, 그런 감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감의 영역은 따로 두고 보면 이 소설은 사랑에 빠지는 그 놀라운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작가는 소설 안에서 사랑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다르다고 했는데,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인간이 우연한 기회로 사랑에 빠져서 그 신비로운 상태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시간들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는 분명히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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