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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pr 02. 2022

<축제와 예감>

- <꿀벌과 천둥>을 만나러 가기 위해 먼저 읽는 에필로그

   온다 리쿠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밤의 피크닉>이었다. 고등학교를 끝내면서 밤새 걷는 행사인 ‘야간보행제’라는 것을 한다는 설정도 특별했지만, 단순히 걷는 과정을 통해 성인을 앞둔 아이들의 다양한 고민과 갈등을 잘 보여준 것도 작가로서의 역량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쉽게 스쳐갈 수 있는 일상의 어떤 작은 행동과 의례들에 섬세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일본 소설이 가진 특별함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익숙해진 작가의 이름에 끌려 읽게 된 소설은 도코노 마을 이야기 시리즈였는데, 사뭇 다른 색깔의 소설이라서 놀랐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작가라고 생각했다. 도코노 시리즈는 동양적 판타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에게 친밀한 세계를 바탕으로 해서 환상적 세계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판타지라고 하면 서양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독자에게 낯선 즐거움을 선사해준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는 한동안 잊고 지내던 작가였던 것 같은데, 의외로 <초콜릿 코스모스>라든가 <불연속 세계>,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 같은 책들을 읽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인상이 약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축제와 예감>을 통해, <꿀벌과 천둥>과 함께 만나는 온다 리쿠는 여전히 흥미롭다.(<꿀벌과 천둥>을 먼저 읽고 나서 <축제와 예감>을 읽어야 하는데, 후자쪽을 먼저 읽고 나서 앞의 책을 읽었다.) 이야기를 읽는 재미, 그 재미를 다시 알게 해주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형상화하는 능력도 훌륭해서, 각각의 인물이 살아있는 것 같고 서로의 관계가 잘 배치되어 있어서 마치 잘 만든 건강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가자마 진과 아야, 마사루, 아카시 모두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과 음악 세계의 개성을 뚜렷하게 구분해서 보여주면서 하나하나 매력적인 인물들을 잘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더해진 것 같다. 콩쿠르를 진행하는 과정이라는 단순한 플롯에 비해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은 걸 보면 확실히 인물들을 잘 살렸기 때문인 것 같다. 더불어 클래식 음악이라는 소재를 섬세하게 그려낸 것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음악이라는 세계의 매력을 새롭게 환기해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어떤 면에서는 <신의 물방울>이라든가 <홍차 왕자>와 같은 만화가 떠오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을 과장되게 그려내는 스타일이 조금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진짜로 감각할 수 있다고 잠시라도 믿게 하는 것, 그렇게 애써서 구체적으로 그려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끔 우리는 <신의 물방울>에서처럼 와인의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심 그런 감각이 불현듯 찾아와주길 바라지 않은가. 가자마 진과 같은 인물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인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만나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예술의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너무 복잡하지 않으면서 너무 가볍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음악과 문학의 유기적 결합이 잘 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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