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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ug 23. 2022

<솔라리스>

이것은 사람이 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소설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철학적 질문을 받아들이고 고민하게 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서사에 집중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독서를 하던 중간에 생각하기 위해서 이야기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면 독자는 쉽게 흥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설적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고 서사가 중요하지 않은 소설들이 많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 서사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소설을 읽는 동안 서사적 특징들을 먼저 찾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정말 놀랍다. 이야기의 흥미 요소가 충분한 데다 철학적 질문 때문에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 이야기를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와 더불어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이 소설은 그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독자에게 생각의 외연을 좀 더 확장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관념을 깨고 상상력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인데, 천재적인 작가는 독자들에게 조금 더 쉽게 그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sf는 시대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소설이 쓰인 시대에 대한 너그러움을 접고 보더라도 작가가 만들어놓은 충실하고 촘촘한 sf적 설정 덕분에 여전히 흥미롭게 외계 행성인 “솔라리스”에 우리의 상상으로 진입할 수 있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놀라움이 더욱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1961년에 쓴 sf소설이라는 한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 소설을 통한 상상력의 확장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즐거움은 어떠한가. 크리스가 하레이를 만나면서부터는 서스펜스가 커지면서 이야기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게 된다. 동시에 하레이를 통한 존재론적 질문을 머릿속에서 굴리면서 학자로서 크리스가 파고드는 솔라리스 연구사와 과학적 설명 등을 읽으면서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런 행성의 정거장에 그렇게 멋진 도서관이 있다는 설정 또한 마음에 쏙 든다는 감상은 빼놓을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은 채 이야기는 이어지고, 고립된 상황에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보면서도 마지막까지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 과학자들의 모습에 경외감을 느끼면서(나라면 벌써 미쳐버렸거나 중독자가 되어버렸을 것이므로) 끝까지 우리의 두뇌에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쫀쫀한 질문들을 던지는 작가에게 찬사조차 던지지 못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순간 잠시 정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건 정말 “언캐니”한 감동이다. 그러므로 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 소름이 전신을 훑어가며 카프카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이 소설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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