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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ug 29. 2022

<잃어버린 발자취>

원시림이 주는 이국적인 그리움을 함께 느끼고 싶다면.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순수한 예술을 하려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런 주인공에게는 영감을 주는 인물, 상황, 환경이 모두 중요한 삶의 요소일 수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처음에는 아름다운 배우 루스도 주인공에게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점성술과 초현실주의를 잘 버무려서 살고 있던 무슈도 마찬가지다. 긴 휴가를 우연히 뜻하지 않은 자극으로 채워줄 원시 음악을 찾기 위한 여행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혁명의 소요 사태도 그렇고, 로사리오와의 만남도 그렇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아주 전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인물, 욕망에 충실해서 영감을 찾아 헤매는 지식인이자 예술인이다. 여행을 통해 주인공에게 나타난 야생의 아름다움을 가진 로사리오도, 기원에 가까운 음악도 모두 그가 떠나고 싶은 현실을 잊게 해주는 대안이며 또 다른 욕망의 대상이다. 


   시시포스처럼 끝없이 돌고 돌면서 반복하며 사는 현대 문명이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을 뿐인데, 그에게 나타난 원시림 속 원시적 질서의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이겠는가. 탄탄하고 긴 문장을 통해 드러나는 주인공의 사유로 볼 때 주인공은 아는 것이 많은 만큼 생각도 많다. 게다가 예술적 성취도 이루고 싶다. 현실에서는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비겁해 보일지 몰라도, 주인공에게는 최선의 방법인 탈출, 즉 (죽음이 아니라면) 현실에서 도망가는 방법밖에 없다. 원시로의 회귀처럼 잘 포장해놓긴 했지만, 주인공의 거창한 독백의 화려한 수사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현실 도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소설적 구도로 보면 인물의 형상화도 잘 되어 있고, 개연성도 충분하고, 인물 간의 관계망도 재밌고, 문장도 뛰어나다. 하지만 당대의 가치를 뛰어넘기 위해 고민했던 작가가 당대의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쉬운 한계점이다. 읽으면서 자꾸 거슬리는 것은 지금의 시선에서 봤을 때 지적할 수밖에 없는, 문명과 밀림의 이분법적 가치판단, 초현실주의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만큼이나 ‘야만인’에 대한 단편적 태도, 무슈와 로사리오의 안일한 대비, 문명이 밀림에 가한 폐해에 대해 눈 감은 것에서 나온 너무나 낭만적인 해석 등이 그렇다. 그런 점들이 “경이로운 현실”을 만날 수 있다는 해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작품 뒤편에 실린 해설에서 말하고 있는 이분법을 뛰어넘은 경이로운 현실주의라는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 음악, 문학 등을 망라한 문화에 대한 다양한 언급과 연결이 흥미로우며 선명한 묘사가 아름다워서, 꼭 한 번 읽을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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