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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l 23. 2022

<연인>

언제나 정확할 수 없는 기억이 가져다준 반전

   기억 속에 있던 소설과 많이 다르다. 심지어 오래되어 가물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강렬했던 영화의 한 장면까지도 기억 속에 있음에도 다시 읽은 소설은 정말 낯설었다. 이 소설은 그냥 단순한 식민지의 백인 여자 아이와 동양인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소설은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자신의 삶이 마치 하나의 영화처럼 보이도록 기억 속에 있는 영상들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어떤 기억은 희미하고 어떤 기억은 생생하듯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과거의 장면들이 모두 다 선명하지는 않다. 생생한 것은 선명하게, 흐릿해진 것은 회상과 감정을 섞어서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쓰고 있다.  


   열다섯 살 무렵의 내가 겪은 일, 중국인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가 주축이 되지만 그 남자를 빼고 나면 나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이었던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족에 대한 마음은 한 가지 결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화자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어머니와 큰오빠, 작은 오빠에 대한 마음도 각각 다르다. 그 마음에는 사랑과 증오, 그리움과 살의가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결코 포기를 모르는 어머니의 삶의 태도에 대한 경탄과 더불어 건달에 불과한 큰오빠만 편애하는 것에 대한 증오가 동시에 존재하고, 죽여 버리고 싶은 큰오빠에 대한 증오와 일찍 죽어서 불멸의 존재로 자리 잡은 작은 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모두 얽혀 가족이라는 의미가 완성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에게 소설을 쓰는 동인이 되면서 자신의 본질에 닿을 수 있는 곳, 그곳은 기억 속에서 꺼내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더 깊은 심연에는 가족이 자리하고 있다. 


     90쪽. “나는 여전히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여기, 이곳에서 사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마음속 깊이 확신할 수 있는 곳은, 삭막하고, 끔찍하도록 엄격하고, 불법적인 행위가 벌어지는 우리 집뿐이다. 가장 궁극적인 확신, 즉 훗날 작가가 되리라는 확신을 되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뿐인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열다섯 살 무렵에 했던 사랑의 의미를 훗날 재발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들 하나하나의 의미를 다각도로 보면서 다시 정립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시점 변화는 절묘하다. 작가는 나와 한 몸과 같은, 나의 기원이면서도 동시에 부정하고 싶은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면서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나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데, 그 속에 존재하는 나는 하나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를 타자화해서 더 자세히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시점의 변화에 녹여낸 것이다. 과거의 영상 속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나와 그것을 보는 나, 연기를 하는 나를 서술하는 나가 이 소설에서는 동시에 등장하고, 그 모든 것의 합이 지금의 화자이다. 


  메콩강 유역의 덥고 나른한 분위기와 욕망에 충실한 사랑이 문학적 분위기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작가의 역량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책을 에로틱하게만 기억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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