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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Dec 10. 2022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

마법과 과학이 만나 만들어낸 진정한 난리법석의 세계

   불과 100여 년 안에 인간은 다른 세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는데 변화의 핵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과학의 발전이다. 과학의 발전은 다양한 형태로 인간을 변화시켰지만 제일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신화의 세계에서 가장 먼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무의식에 있을지도 모르고 혹은 구전되어 오면서 우리의 의식 속에도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있을 영적인 존재들, 마법사, 요정, 귀신, 도깨비, 다양한 괴물, 인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동물들 등등과 우리는 언젠가부터 영문을 모르고 멀어졌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아마도 다양한 현실적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이제 넷플릭스로 볼 수 있다. 


   어렴풋하긴 하지만 우리는 어릴 적 들었던 옛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야기들 속에서는 호랑이도 말을 하고 도깨비가 사람이랑 장난을 치는데, 그 이야기를 들었던 시절에는 이야기가 사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크면서 우리는 산타를 더 이상 믿지 않고 마법 같은 건 코웃음을 치지만 그렇다고 영적인 세계 혹은 초월적 세계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과학적 사실이라고 하면 일단 더 믿고 보지만, 그 과학이라는 것이 인간의 허무맹랑한 상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순수하고 믿음으로 가득했던 마법의 세계에서 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나왔지만 어쩌면 그곳이 동전의 양면처럼 과학적 상상력과 맞대고 있는 세계라는 걸 스투르가츠키 형제는 좀 더 예민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 세계가 무너지고 사라져 가는 걸 보면서 당대의 과학자로서 사명감에 불타오르기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몰락해가는 세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탐구했던 것 같다. 그 세계는 소위 말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적 세계, 어떤 질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세계가 아니라, 밑도 끝도 없이 괴물이 출현하는 세계,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다. 그러니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난리 법석일 수밖에 없는 곳, 난리법석 말고는 다른 것은 없는 곳이다. 


   그 속에서 이유를 찾으면 우리는 무의미를 발견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항상 합당한 이유를 찾는 것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살면서 뚜렷한 이유 없이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저 인정하지 않거나 외면해왔을 뿐.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이성적 사고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들 속에서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 세계를 무너뜨리면서 얻은 세계는 노동으로 채워진 곳이고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되는’ 곳이다. 그런 세계에서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과학적 언어를 늘어놓으면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굳게 믿고 있는 과학자들이 사는 곳, 그곳이야말로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아닐까. 그들의 난리법석을 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어떤 세계가 불가해한 세계인지 알 수 없게 만드려고 이 형제들은 그토록 애를 썼던 것 같다. 당대의 현실을 마구 비틀어대면서, 결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웃음 포인트를 더 많이 발견할 때까지 계속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밑줄 친 일부 문장들.


- 88쪽. 우리 모두는 순진한 유물론자들이야, 하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 모두는 이성주의자들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그 즉시 이성적으로 설명되기를, 즉 이미 잘 알려진 사실들의 뭉텅이로 편입되기를 원한다. 우리 중 누구도 전혀 변증법적이지 않다. 아무도 알려진 사실과 어떤 새로운 현상 사이에 미지의 대양이 놓여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현상을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그렇기에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해 버린다. ...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세기의 인류다. 우리는 온갖 것을 보고 말았다. 살아 있는 다른 개의 등에 이어 붙여진 살아 있는 개의 머리도 보았고, 상자만 한 크기의 인공신장도, 살아있는 신경으로 조종되는 강철 팔도 보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태평하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252-253쪽. 그들은 그 어떤 종류의 일요일도 견딜 수 없는 부류였다. 일요일은 너무나 지루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 위인들, 그들의 좌우명은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였다. ... 그들이 마법사가 된 것은 아주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고, 지식의 양이 너무도 많아 드디어 질적 전환을 일으킬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 모든 사람은 영혼 속에서는 마법사다. 그러나 진정한 마법사가 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적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때이며, 낡은 의미에서의 오락을 즐기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더 즐거울 때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업무 전제는 진리와 멀지 않았다. 왜냐하면 노동이 원숭이를 인간으로 진화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부재는 훨씬 짧은 시간 내에 인간을 원숭이로 바꾸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 291쪽. 사실, 가장 흥미롭고 세련된 과학적 결과는 언제나 무언가 초이성적이거나 막연하고 모호해 보이는 특징이 있다. 과학과 동떨어진 사람들은 오늘날 과학으로부터 오로지 기적만을 기대하고, 실제로 진정한 과학적 기적을 눈속임이나 정보과학의 어떤 지적 산물과 구별하지도 못한다. 

- 466쪽. “좋은 책을 끝에서부터 읽는 것은 좋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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