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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Dec 22. 2022

<각성>

더 이상 각성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꿈꾸게 됩니다

   여성이 자신을 속박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에 대해 쓴 소설은 많은데, 그 욕망이 대체로 사랑에 매몰되거나 귀속되는 경우가 많아서 실망스러운 경우도 많다. 현재의 생활이 –결혼 생활인 경우가 많지만- 만족스럽지 못하고 권태로울 때, 사람들은 종종 바깥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넓고 광활한 바깥세상에는 수많은 유혹과 선택지가 존재한다. 


   <보바리 부인>에서도, <안나 카레리나>에서도 여성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변의 시선을 거스르기 위한 시도를 한 경우이긴 하지만 그들은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다. 사랑이라는 가치는 모든 것을 바치고도 남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기 존재를 뛰어넘을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구태를 벗어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페미니즘 소설이 분명하다. 


   사실 성공한 사업가인 퐁텔리에가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의 이목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가 제공하는 윤택한 삶이야 더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마흔 살가량 된 그런 남자와 결혼한 스물아홉의 에드나가 그런 환경에 만족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는 없다. 퐁텔리에에게 에드나는 자신이 이룬 성공 퍼즐의 한 조각 정도로 보이는데, 에드나는 이제 막 삶의 의미에 눈을 뜨기 시작한 여인이라서 그런 남편의 속성을 꿰뚫어 볼 때가 된 것이다. 게다가 퐁텔리에는 잔소리까지 많다! 


   멋모르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도 있지만 그 삶은 온전히 에드나가 선택한 삶이라고 볼 수는 없다. 태어난 환경과 사회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에드나에게는 그랜드 아일로 휴가를 간 그 시점이었을 것이다. 수영을 겁내던 것을 극복하는 것,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생각도 해보는 것, 남편이 아닌 남자들과 교류하면서 남편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등등 에드나가 각성하는 계기는 사소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물일 뿐이다. 


  출간 당시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었고 이후 60여 년간 묻혀있었다던 이 작품은 현재에도 결말에 대해 논란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에드나가 변해가는 것, 서서히 감정도 변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그 섬세한 과정을 작가가 물 흐르듯 잘 표현해서 그런지,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도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파국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해방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눈길이 머물렀던 문장 몇 개


- 부인은 두 눈을 빠르게 굴려 어떤 대상을 보고, 깊은 생각이나 사색의 미로에 갇힌 듯 그 대상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버릇이 있었다. 12쪽.

- 간단히 말해, 퐁텔리에 부인은 우주 속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신이 자기 내면과 주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31쪽.

- 아이들의 부재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운명이 아니었음에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모성애의 책임에서 그녀를 해방시켜 주는 측면도 있었다.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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