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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r 11. 2023

<동 가츠무후>

독자를 상대로 한 작가의 심리게임

   주인공은 초로의 노신사로 하인을 두고 외롭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혼자 남겨진 사람이라면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면서 자신을 삶을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법하다. 소설의 서두에 나오는 “나의 분명한 목표는 삶의 양 끝을 연결하여, 노년기에 이르렀을 때 젊은 날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었다. ... 내가 그저 누군가를 잃기만 한 것이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군가를 잃은 상처를 어느 정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경우엔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다.(10쪽)” 이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기꺼이 화자의 편이 되어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분명히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설득력 있게 들려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자인 벤치뉴 편에 서서 이야기를 따라간다. 엄마가 정해놓은 신부의 길을 걷지 않고 사랑에 빠진 카피투와 결혼하려는 그의 마음과 의지에 손뼉을 쳐주면서 그의 사랑을 응원한다. 벤치뉴를 방해하는 듯한, 집사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인물인 주제 지아스는 못마땅하다. 벤치뉴의 사랑에 냉소적인 주스치나 당이모도 마음에 안 든다. 그의 사랑에 걸림돌이 없기를! 어서 사랑의 결실을 맺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하면서 살짝 지루한 그의 사랑의 여정에 동행한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읽어나가다 보면 조금씩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그는 유난히 몽상을 좋아하는 듯하다. 책벌레와 대화를 하기도 하고,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폐하와도 많은 일이 벌어지는데 순전히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을 다해 따라가고 있는 이 친구, 벤치뉴는 상상력이 남다른 사람이다. “나는 홀로 잠시 생각에 잠겨 공상에 빠져들었다. ... 상상력은 내 삶 전체의 동반자였으며, 살아 있고, 빠르며, 안절부절못하고, 때로는 소심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친구이자 거듭되는 삶의 투쟁을 가장 잘 참아낼 수 있는 친구였다.(117)” 


   더불어서 자기애도 충만한 사람이다. 자기가 지은 소네트에 스스로 취해서 어쩔 줄 모른다. 질투심도 유별나다.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로 누구 하나 죽일 듯이 질투에 사로잡힌다. 사랑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편지를 주고받던 친구인 만두카의 죽음을 보면서도 자기 기분을 망쳐버린 것만 아쉬워한다. 


   여기서부터는 어딘가 좀 싸한 기분이 든다. 이 녀석이 정말 제정신인 것일까. 끝까지 만두카의 장례식에 가지 않고서 하는 말이 “악마가 그렇게 추한 것은 아니다.(238)”하는 것이다. 이제 마음이 조금씩 화자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데 이 지점에서 그전에 쉽게 지나쳤다가 다시 생각나는 문장이 있다.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다면, 이 장의 나머지 부분이나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174)” 화자는 독자를 대상으로 게임을 하는 중인 것일까. 


   의심이 시작되면 이제 끝은 없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일만 남았다. 마치 벤치뉴처럼, 독자도 그의 의심에 빙의된다. 이제 우리는 의심의 눈으로 화자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게 될 것이다. 벤치뉴가 망상에 사로잡힌 환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아내와 자식이 불행할 수밖에 없고, 죽음이 예견되어 있다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는 혼자만의 성에 갇혀서-어릴 때 살던 곳을 그대로 재현해서 지은 집- 부잣집 엘리트로서 살던 그대로 곱게 자신만의 생각과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독자는 그가 전혀 불쌍하지 않다. 그의 회고록은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고백이므로 자기만족적인 서사이지만, 바깥의 것을 볼 수 없는 화자에게 독자의 비판적 시선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화자도 독자가 어찌 생각하듯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엘리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이 확대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승자는 벤치뉴가 아닐까. 영원히 그곳에서 살고 있을 벤치뉴는 아무 문제 없이 살고 있을 테고,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것은 독자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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