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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r 18. 2023

<경험 수집가의 여행>

삶에 낙담하고 싶을 때 읽어야 할 책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경험을 수집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앤드루 솔로몬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이 쉽게 경험하기 힘든 지역이나 장소를 가보고,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만나는 것 때문일까. 그런 내용이라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유튜브만 찾아봐도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저자처럼 예술 분야를 비롯한 특정 분야의 전문가나 고위층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경험의 특별함 때문에 이 책을 읽으려고 한다면, 아마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반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함은 경험의 층위의 특별함도 물론 있지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특별함이다.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여행의 의미에 관해서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 그 태도가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여행은 나와는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럼으로써 내가 모순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후 내가 정신 질환, 장애, 성격 형성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인간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단 하나의 존재 양식만 가능하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명의 연장이었다.”(56)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편견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의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보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감정과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 안다는 것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막상 여행을 떠난 경우에는 그 차이가 드러난다. 여행은 그동안 숨겨놨던 많은 모습을 무방비한 상태로 드러나게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앤드루 솔로몬의 기록을 토대로 보면(기록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그는 자신과 다른 세계를 만났을 때 당혹스러워하기는 해도 거부하거나 쉽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아주 조심스럽게 경험하고 관찰한 것을 이야기해 준다. 게다가 배경지식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우리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글을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특히 알고 있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특수하면 특수할수록 더 그렇다. 작가가 특별한 경험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작가를 더 잘 알게 되고 친근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책을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추가된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다.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인터뷰를 하면서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고, 자신의 조상의 땅을 밟으면서 자칫하면 비극으로 끝났을 수도 있을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의 부조리함과 세상의 무질서, 끝나지 않는 역사의 비극과 부당함을 무수히 보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매몰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삶이 망가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려는 그 힘에 주목한다. “타인의 삶을 짓밟는 사람들은 파괴에 에너지를 소진하지만, 그 때문에 삶이 망가진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는 데 힘써야 하고 그 해결책 중 일부가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증오가 우리 가족을 미국으로 내몰았고, 덕분에 우리는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자유를 누렸다.”(617)


   모험을 싫어하던 겁 많은 작가가 상상하지 못했던 곳까지 다니면서 쓴 글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봤을 때, 그 결론은 전혀 특별하진 않았지만 새삼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작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많은 여행 중에서 죽음의 목전에 다다르지 않은 경우가 없지는 않았을 테니, 경험의 총체로 내놓은 작가의 깨달음과 결론은 가장 중요한 것에 진실하게 가닿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랜 여정을 더듬다가 마지막 장까지 닿아서 작가가 하는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내가 아이 때 했던 여행에서 시작하여 내가 아이와 함께한 여행으로 끝맺는다. ... 내가 불멸할 것 같던 시절에서 시작하여 내 필멸성을 확실히 깨닫는 시절에서 끝맺는다. 나는 자란 것이다.”(675)... “나는 깨달았다. 점심으로 장어를 시키거나, 스카이다이빙을 하거나, 전쟁으로 파괴된 땅을 방문하거나 하는 만용은 부모가 되어 가정을 지키는 모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부모가 되는 것은 망망대해와도 같은 세상의 방대함을 헤아리는 일인 동시에, 비록 잠시뿐일지라도, 자기 아이들에게 기꺼이 그런 방대함이 되어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거나 혹은 부모인데, 우리 또한 모험의 일부라는 사실을, 앤드루 솔로몬은 이렇게 우아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 삶의 모험에 쓰러지려고 할 때 기꺼이 한 번 더 일어설 힘이 되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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