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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pr 08. 2023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슬픈 호러

   아르헨티나를 비롯해서 남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끔 뉴스에서 보이는 모습이 알고 있는 전부다. 뉴스라는 것이 그 나라의 전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에서 보는 뉴스도 그렇지만 바깥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뉴스가 얼마나 단편적인 부분만 보여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를 보면서 남미에서의 삶이 그리 녹록지는 않겠다는 것을 짐작하곤 했다. 우리가 아는 일상적 어려움과 폭력의 정도와는 사뭇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에 쐐기를 박은 것이 이 소설이다. 


   작년 서울국제도서전 주빈국이 콜롬비아여서, 책방에서도 콜롬비아 문학 특집을 하면서 읽었던 소설들도 모두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는데, 생각해 왔던 것 이상으로 그 나라의 상황이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콜롬비아와는 다른 나라인데도 소설이 반영하고 있는 그들 나라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에 읽은 소설은 콜롬비아 문학 때와는 달리 여성 작가이기 때문이라서인지, 약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불행과 억압, 차별 및 소외가 조금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작가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공포와 호러의 장르적 특징이 그려내고 싶은 사회의 모습과 잘 맞아떨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 <더러운 아이>의 경우, 공포로 분류하지 않아도 되는 작품임에도 가장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현실이 상상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기 때문인 듯하다.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마약에 취한 엄마와 길에서 사는 것도 그렇지만, 마약운반책을 하다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비슷한 또래의 이야기는 현실을 지옥처럼 보이게 하기 충분하다.


    <마약에 취한 세월> 또한 마약으로 인해 환상을 보는 것이 환상적일 뿐, 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마약에 취하는 여자아이들은 모두 가난하고 불평만 하는 부모와 함께 살아간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작가가 그리고 있는 현실이 현실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 때 종교를 찾거나 비현실의 세계로 도피한다. 이 작품들에서 그리고 있는 현실은 이미 종교로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은 상태라서, 비현실, 즉 환상의 세계로 더 적극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왜곡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차라리 더 견딜 만한 것처럼 보인다. 


   <오스테리아 호텔>에서 복수하는 로시아와 플로렌시아가 보는 환상은 그들의 작은 복수마저도 위협하는 현실의 상징-독재시절의 경찰 권력-처럼 보인다. 아예 작품 안에서 작가가 직접적으로 주제를 전하고 있는 <파블리토가 못을 박았다 ; 페티소 오레후도를 떠올리며>는 그 사회가 가진 부조리가 개인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웃집 마당>의 주인공 파올라도 선의를 가진 개인이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사회의 모습과, 개인과 개인 간에도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검은 물속>은 신부마저 자살해 버린다. 아무 목적 없이 재미로 강을 더럽히는 그곳에서는 말이다. 


   그럼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인에게 불을 지르는 남편이 있는 곳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으려면 스스로 불을 지를 수밖에 없다는 역설이 슬프고 또 슬픈, 그래서 오히려 호러처럼 느껴지는 마음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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