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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pr 15. 2023

<황사를 벗어나서>

우리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읽어요

   1930년대 미국 남부지방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2023년 현재 한국에서 읽으면서 마치 우리 일처럼 느낄 수 있다는 건 행운인가 불행인가. 


   열세 살인 빌리 조가 살고 있는 오클라호마주 팬핸들 지역에 불어오는 황사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마침 우리도 극심한 황사가 몰려와서 소설 속 상황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역사로부터 일정한 교훈을 배우고 있긴 하지만 탐욕 앞에서는 배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덤으로 깨닫게 된다. 


   소설은 운문 형식이고 열세 살 아이가 화자라서 쉽게 읽힌다. 열세 살 화자의 문장이 길고 정제되어 있었다면 몰입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소설은 마치 정말 그 또래의 아이가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때로는 열세 살 아이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 같기도 한데, 그맘때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몸속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어른들만큼이나 현실의 어려움과 아픔을 느끼지만, 어른들은 당면한 고통을 풀어나가기 위해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반면에 아이들은 상상 속으로 숨거나 금방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독한 황사가 지나고 나면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금방 노래가 살아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속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이들의 시절이며 우리도 그런 시절을 다 지나왔지만 잊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이 지독한 황사가 뒤덮는 곳에서 사는 것도 모자라서, 화재로 엄마와 갓 태어난 동생을 잃은 빌리 조는 그 화재로 자신도 손가락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된다. 엄마가 가르쳐준 피아노, 자신이 제일 위안으로 삼는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고, 그날의 사고가 자신의 잘못인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의 잘못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말문을 닫아버리고 할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피부암의 징후가 나타나는 것도 그냥 무시해 버린다. 


   불행을 겪는 이런 이야기는 어쩌면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지만 열세 살 아이가 말해주는 것 같은 성긴 문장 속에 있는 간극 안에서 우리는 조금 더 상상해 보게 된다. 그 아이가 더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이 소설은 독자에게 그 간극을 채울 기회를 주고 있어서 오히려 풍성해지고 있다. 자꾸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빌리 조가 살아있는 아이, 아는 아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숨이 막힐 것 같은 황사가 걷히기를 함께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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