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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y 20. 2023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아프리카의 전통적 매력과 현실을 잘 버무린 책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고 한동안 아프리카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영화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도 ost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낯선 멜로디가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만들어주었고 가슴 뛰게 하는 리듬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그게 바로 아프리카의 힘, 즉 주술적인 힘이라고 생각했다. 


   대상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피상적인 지식만 갖고 있을 경우에 사랑에 빠지기는 참 쉬운 법이다. 한동안 그렇게 검은 대륙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으면서 치누아 아체베를 비롯한 아프리카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던 것 같다. 그때 읽었던 책들은 모두 환상을 강화하는데 일조했을 뿐인데, 아마도 읽고 싶은 대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뒤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프리카의 문학을 다시 봤을 때, 그때는 낭만적으로만 보았던 아프리카의 현실이 처참하게 피를 흘리며 다가와서 당혹스러웠다. 그동안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 내 탓이거나 현실이 더 나쁜 쪽으로 변해버린 아프리카 탓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두 쿠루마를 통해서 보는 아프리카는 현재 진행 중이고, 그곳에 주술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희망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인 환상성은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나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이 책은 꽉 짜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결론까지도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소설이다. 결론이 예상 가능하다는 점은 서사 문학에서는 결점이 될 수 있는데, 시작부터 긴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근대 문학도 권선징악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즐겁게 읽혔던 이유는 풍자와 해학이 좋은 양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고 그 구조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6장으로 구성된 야회가 동일한 형식 안에서 기승전결의 구조가 아닌 병렬적인 구조를 갖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소설은 지극히 아프리카적인 구전 문학을 각 주제별로 한 장에 담아놓은 것인데, 그 이야기들이 아프리카의 현실을 이해하기는 훌륭하지만 문학적인 재미를 느끼려는 독자에게는 사실 못 미치는 구석이 많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기록의 역할도 하고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세련된 현대 문학(서양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에 익숙해진 독자에게는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부터 이 책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문학으로서의 의의를 따진다면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학적 성취나 재미로 따져볼 때는 여기서 더 큰 즐거움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문학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기꺼이 추천해 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있으면 아프리카 사람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때 매료되었던 영화는 <파워 오브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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