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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y 13. 2023

<타타르인의 사막>

자기 안의 요새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

   인간에게 시간처럼 무서운 것이 있을까. 태어난 이후로는 언제나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지만 결코 인간이 이기는 법은 없다. 


   학교를 마치고 막 어른이 된 순간,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이, 그 어떤 가능성도 무한하다고 생각되던 나이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만다. 어떤 충동, 앞날에 대한 충분한 예측이 없이 내린 판단, 혹은 그 순간에 안주하기 위한 행동 하나하나가 시간 속에 쌓인다. 그렇게 쌓이는 시간은, “계속해서 삶을 바스러뜨리고 있었다.”(141)


   조반니 드로고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요충지라고 알려진 변방의 요새에 부임하게 된다. 부임했던 날부터 그는 요새를 떠날 생각을 하지만, 상사가 딱 넉 달만 기다렸다가 옮기라는 말을 받아들인다. 넉 달은 드로고가 요새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서, 그가 이미 습득한 생활 방식이 편안해진 상태다. 드로고는 남는 쪽을 선택하고, 그 선택은 언제든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로고는 죽기 전까지 요새를 떠나지 못한다. 


   그가 휴가를 받아서 도시로 갔을 때, 결혼까지 생각했던 마리아와의 어색한 만남 이후로부터 드로고는 군인으로서의 성공을,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해서 공을 일으키는 것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막연하고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그의 선택 하나하나가 어릴 적 상상했던 삶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질 기회는 우연히 벌어질 전쟁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너무 노쇠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말해주는 거대한 상징이다. 대단한 기회 자체도 인생에서는 잘 주어지지 않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조차도 우리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게다가 전쟁이 무슨 기회란 말인가! 작가가 비틀고 싶은 의도를 독자도 모를 리가 없다. 


   담백한 빵은 씹을수록 고소하고 단맛이 올라오는데,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우리가 가진 각자의 요새를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책은 한 장면만으로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게 되는데, 드로고와 마리아가 만나는 그 쓸쓸한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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