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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y 29. 2023

<녹색의 장원>

한 때 아마존의 밀림과 원주민과 정령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사람이라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탐구는 인간이 가진 특성이라서 어떤 방향으로 뻗어나가더라도 놀랍지는 않다. 빽빽한 밀림과 깊은 바다, 광활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상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실체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으로 미지의 대상을 만들어오기도 했었다. 


   그것이 온전한 상상의 세계일 수도 있고 현실을 왜곡한 세계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세계가 없이는 재미있게 살아갈 수가 없다. 기득권이며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일수록 그런 세계를 더 많이 꿈꾸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인종적 우월함을 내면화한 데다 부와 권력을 갖고 있었던 아벨이라는 인물이 애초에 체제 전복을 시도했던 것도 자신이 꿈꾸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게 좌절되었을 때 시도한 글쓰기를 통한 자아실현 또한, 현실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만든 세계를 글로 표현했던 것이다. 꿈꾸었던 현실의 변화도 요원하고, 자신이 창조해 낸 세계를 통한 꿈꾸기도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아벨은 환상의 세계로 직접 뛰어든다. 


   비록 그 세계가 실제의 모습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일까. 아벨이 경험한 세계는 이미 아벨의 상상의 눈으로 보고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실제의 자연과 동떨어져 있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아벨은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고, 리마와 같은 환상적인 정령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으며, 영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의 세계에서는 영원히 머물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현실과 맞닿는 지점에서 실패나 비극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아마 그 세계에서 머물렀다면 우리는 아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벨과 리마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와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모두 아벨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는 것인데, 인간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말한다고 하더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아벨의 말은 아벨의 상상의 체에 걸러진 것들이다. 


   아벨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기 시작한 친구는 아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사람인데, 아벨의 말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검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독자는 아벨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부감 혹은 지루함을 참으며 들을 수밖에 없지만, 그게 상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상상으로 만든 아벨의 상상을 듣는 재미는, 윤리적 측면을 걷어내고 나면 순전히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 봤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불러내준다는 점이다. 그런 마음은 현실을 살다 보면 종종 구석에 잠들어있게 마련인데, 마치 잊고 있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한 번쯤 불러내주는 것이 작가가 하는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때, 이 책은 그런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때 아마존의 밀림과 정령과 원주민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면 분명히 더 마음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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