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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y 30. 202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일단 시작해야 하는 소설

  어쩌면 유명세에 대한 편견 때문일 수도 있다. 정말 그렇게 대단한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혹시나 실망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있는 동시에 잘 소화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읽기 전부터 이렇게 요란한 마음이 드는 소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마음을 가라앉히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읽는 순간부터 프루스트의 방식대로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정확하고 섬세한 묘사를 위해서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시냇물이 느리고 조용히 흐르는 것처럼 스며들어왔고,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차분한 톤으로 말해주는 화자의 목소리는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이 부드러운 음악처럼 잔잔하게 흘러들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흐름을 놓칠 때도 있지만 놓친다고 해도 엉뚱한 곳까지 가지는 않게 만드는 이유는, 작가가 어떤 대상에 대해 묘사하더라도 아주 철저하게 자신이 가진 모든 언어를 동원해서 표현해 내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에 고모할머니가 스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만 보더라도, 다양한 비유와 방식으로 세심하게 관찰한 것을 보여주는데, 작가의 이런 서술만 충실히 따라가도 독자는 고모할머니가 스완에 대해 품고 있는 단순하지 않은 감정을 잘 알아챌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삶에서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43)는 문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타인에 대해 우리가 평가하는 것들은 모두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관념이라는 것을 아주 섬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현재는 기억과 추억 속 시간들의 총합이라서, 마치 우리의 기억이 시간 속에서 항상 소멸해 가듯 읽고 있는 순간조차 프루스트의 소설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행위의 가장 큰 의미는 기억 속에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시간을,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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