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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n 03. 2023

<캄캄한 낮, 환한 밤
-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

중국 현대작가의 메타픽션

   “한편으로는 명리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기를 갈구한다.”(7) 


   소설가가 이처럼 솔직하게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모든 예술 장르에서 돈과 명예를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예술을 자본으로 등치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만한 가치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에- 글로 예술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구나 그런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천박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대놓고 첫 문장부터 부와 명예를 갈구한다고 말하고, 자신이 시나리오와 감독은 물론 주연까지 맡겠다고 하는 것부터 어딘가 부조리하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는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감독과 배우들까지도 불러 모아서 자신이 쓴 단편소설을 시나리오로 작업하겠다고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야심 찬 문장을 던져놓고 내보이는 작가의 단편소설은 그 조악함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배경 묘사와 인물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 것과 다르게 작가가 설정한 주요 인물인 리좡은 미성년 강간범인 데다 리좡이 저지른 강간 사건을 해결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전근대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작가의 소설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거기다 대고 그 단편이 전부가 아니라고, 시나리오로 쓸 이야기는 리좡과 리징의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서 ‘진기한 이야기’라고 하는 실제 이야기의 시놉시스를 보여준다. 그러나 농민공인 리좡은 물론이고 리징도 소름 끼칠 정도로 시대착오적이면서 평면적인 인물이라서 다시 한번 독자조차 말문이 막히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작가가 설정한 인물들이 모두 실존하는 인물이라서, 작가는 그 인물들을 인터뷰하러 다니는데 또 한 번 당혹스러운 것은, 작가가 보여준 이야기와 실존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인터뷰를 토대로 해서 쓴 시나리오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탄생된다. 작가가 보여준 시나리오를 본 감독과 배우들의 반응은 당연히 회의적이라서, 작가에게 기꺼이 혼자서 감독과 배우를 맡으라고 양보(?)해준다. 


   작가가 소설 속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먼저 허문 상태에서 자신의 소설 속 소설과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존 소설의 형식에서 한계를 느낀 소설가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기 위한 전형적 메타픽션적 시도다. 작가는 자신의 후기까지 스스로 덧붙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독자들의 필요가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407)고 하면서, “나는 이미 재능과 감정이 고갈되었다. 글쓰기의 어려움이 나이 많은 여자가 아기를 낳는 것과 같다.”(413)는 고백을 이어간다. 그것이 작가가 보여주는 커튼콜인데, 작가가 진정으로 커튼콜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이 독자들에게, 혹은 당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작가들의 천형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통해서 단순히 부와 명예를 얻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다. 이런 고민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이런 실험적 글쓰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사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예술가들을 위한 자기들만의 축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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