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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n 10. 2023

<만>

세계 여행을 방구석에서 하고 싶을 때

  주인공 '만'은 어머니가 세 명이다. 얼굴도 모르는 낳아준 어머니와 주인공을 구해주고 좋은 곳으로 보내준 어머니, 키워주고 캐나다로 보내준 어머니가 있다.

  
  베트남 사람들보다 피부도 하얗고 콧대도 오뚝한 주인공을 키우면서 어머니는 “‘완벽하게 충족된’ 혹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혹은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을 뜻하는 ‘만’”(48)이라고 이름을 붙여줬고 그 때문에 주인공은 자라면서 아무런 꿈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캐나다에 자리 잡은 남자에게 선택받아서 결혼하고 이주하는 삶 또한 순순히 받아들인다. 남편과 별다른 감정 없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주어진 삶을 묵묵히 감내하고 최대한 맞추려고 애쓰지만, 남편의 가게인 베트남 식당에서 일하면서는 메뉴에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고향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선보여서 몬트리올에서 살고 있는 베트남 이민자들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일을 하면서 만난 ‘햇살’ 청년과 홍을 비롯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쥘리와의 우정을 통해서 만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파리에서 만난 뤽을 통해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만을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설 <만>은 작가의 전작인 <루>와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단장이 이어지면서 서사가 연결되는 구조인데, <만>에는 각 단장에 제목이 붙어있다. 그 제목들이 각 단장의 의미를 상징하는 엄청난 의미가 들어있다기보다는 제목으로 구분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 보면 그때그때 생각이 나는 기록들을 남겨두었다가 연결한 듯한 이야기인데, 새로운 서사도 없고 빛나는 문장도 없어서인지 뒤로 갈수록 지루하게 느껴진다. 내성적이고 조금 고지식하며 재치 있게 말하는 재주가 없는 외국인 친구가 자기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문학적 기쁨보다는 낯선 문화에 대한 새로움을 알게 되는 기쁨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문장이다. 베트남어와 프랑스어, 영어 단어에 대한 예민함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작가가 쓴 문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문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 <엠>도 비슷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작가가 자기 글 안에 갇혀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또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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