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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n 19. 2023

<삼총사>

삼총사의 주인공은 삼총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

   주말에 책방에서 벼룩시장을 여느라 독후감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다. 독서모임이 끝나고 나서 오후 1시부터 벼룩시장을 시작했는데, 모임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른 생각은 할 틈이 없었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북적이는 데다 음식과 와인이 테이블에 올라 있으니까 삼총사들이 들르던 여관이 떠오르긴 했다. 그들은 스페인 와인도, 보르도 와인도, 샴페인이나 앙주 와인도 많이도 마셔대곤 했다, 아침부터. (책을 읽는 동안 혀 양끝으로 침이 스르르 고이곤 했다. 와인 첫 모금을 마셨을 때처럼.)


   이번에 삼총사를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그동안 주인공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앞쪽의 주인공은 다르타냥일지 몰라도 뒤로 갈수록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밀레디였다. 이렇게 명석하고 뛰어난 지략을 갖추고 있으면서 대단한 담력을 갖고 있고 외모까지 우월한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누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뒤마가 그녀에 대해 묘사해 놓은 것은 비록 악인의 면모라고는 하지만 전혀 야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웅에 버금가는 인물로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지략가이면서 배포가 두둑한 인물로 그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라면 누구나 그녀의 매력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고, 여자도 금방 마음을 내어주게 된다. 


    “그녀는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주위를 둘러보며 정원의 지형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밀레디는 훌륭한 장군 같아서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내다보고, 전투의 승산에 따라 전진하거나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466)
  “한 여자가 그녀의 삶에 불행을 가져오는 데 그렇게 중요하고 숙명적인 역할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468)


    소설 속 전통적 영웅들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총사와 다르타냥처럼 국가 혹은 집단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자신의 희생까지도 감수하는 전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밀레디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인다. 순전히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 복무하거나 복수를 위해서 영웅적 노력을 하는 밀레디를 보면, 전통적 서사의 영웅에서 벗어나서 반영웅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밀레디는 현대적 유형에 가까운 인물처럼 보인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총사들의 모험담을 읽으면 편안한 재미가 있지만, 밀레디의 활약을 보면 좀 더 세련되고 현대적인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영웅과 악인의 구도로만 본다면 밀레디는 악인이라서 비난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런 측면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인물이라서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읽어도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복수 드라마 여주인공들의 원형이랄까. 


  그동안 익숙히 알고 있던 삼총사와 다르타냥의 이야기에 가려져서 모르고 있던 밀레디라는 인물을 새롭게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더 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할 수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지금껏 살아남은 고전들은 역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반드시 프랑스 와인 한 병을 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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