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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n 24. 2023

<여행자와 달빛>

이탈리아는 그렇게 환상적인 곳인가요

   삼십 대 중반의 미하이는 에르지와 결혼해서 베네치아로 신혼여행을 간다. 신혼여행이었지만 둘은 마냥 들떠있거나 행복하지 않다. 미하이는 몽유병자처럼 보이고 에르지는 그런 미하이가 불안하고 이해하기 힘들다.


   ‘소용돌이’라는 환상을 보며 존재론적 불안을 느끼는 미하이는 십대 시절에 울피우시 터마시 가족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고 여전히 그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고 믿는다. 일반적인 아이들과 다른 생활을 하고 반항적인 면모를 가진 터마시와 에바 남매는 미하이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이 가진 죽음에 대한 매혹과 연극적 삶, 종국에는 자살로 삶을 마감한 터마시의 선택이 미하이에게 여전히 풀리지 않은 흔적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을 간 이탈리아에서도 어딘가 그들의 영향을 느끼게 되는데, 그 시절에 함께 어울리던 세페트네키 야노시를 우연히 만나면서 그런 의혹은 점차 확신이 된다. 미하이는 열차가 잠시 정차한 사이에 내렸다가 다른 열차를 타면서 에르지와 헤어지게 되는데 오히려 에르지를 찾지 않고 혼자 이탈리아를 정처 없이 떠돌게 된다. 에르지 또한 미하이를 이해하기 힘든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파리로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 


   미하이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래전 알고 지내던 발트하임을 찾아가는데, 그와 나누던 죽음에 관한 철학적 대화 또한 미하이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에르지는 부유한 전남편에게 돌아가기로 하고, 미하이는 죽기로 결심하는데 엉뚱하게도 미하이가 있던 작은 마을의 영세식에 참석하게 되면서 그 결심이 방해를 받게 된다. 그런 미하이를 그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데리고 가면서 소설이 끝이 난다. 작가는 미하이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결말을 맺는다. 


    “이것이 그의 운명이다. 그가 굴복하는 것이다. 실재하는 것들은 그보다 더 강했다.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항상 아버지들, 졸탄들, 회사들, 그리고 그 사람들, 그들이 더 강했다. 
  아버지는 잠들었고, 미하이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빛 속에서 토스카나 산들의 굽이진 능선을 읽어내고 있다. 살아남아야 한다. 폐허 속의 들쥐처럼 그 또한 살아남을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 인간은 살아 있어야 항상 뭔가가, 여전히 뭔가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382) 


   소설의 배경이 되는 때는 헝가리가 극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던 시기라서 사회적으로도 종말과 같은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누구나 쉽게 허무주의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허무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죽음조차도 열망으로 포장해서 의미를 부여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 열망의 무게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사라지는 것도 아주 쉬울 것이다. 거품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미하이가 아버지를 따라 나서면서 살아남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납득이 가지만, 이 정도 분량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허망함의 무게에 대해 생각한다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보다 더 가벼운 것이 떠오르게 된다. 


   “삶이 충만하기 때문에 궁극의 황홀경을 향하듯 치명적인 사랑처럼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들, 그들이 품는 죽음의 욕망에 대해 말하는 거야. 네가 이것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설명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고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해했다는 거지. 나는 그런 이유로 죽어가는 것이 에로틱한 행위라고 말하는 거야.”(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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