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다면>

지독하게 아픈 가족애

by 초콜릿책방지기

은행나무 출판사가 초콜릿 책방의 독서 모임을 구원해주었다. 책방을 열면서부터 해보고 싶었던 모임이었지만 이제껏 지지부진한 모습만 계속되었을 뿐이었다. 지속가능 여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는데,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애덤 해즐릿의 소설 <내가 없다면>의 출간을 기념해서 동네 책방들을 위한 이벤트로 독서 모임을 위한 무료 도서 5권을 지원해주었다. 무료 도서가 무려 5권. 이런 말장난은 참 쓸데없다고 생각해왔지만 도서 지원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해줄 좋은 표현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써보았다. 나중에 다시 보게 되면 분명히 속에서 지저분한 말들이 올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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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서 모임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료 도서는 수중에 남을 테니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신청을 했다. 막상 5권이나 받고 나서, 한 권은 내가 갖는다고 해도 쌓여있는 나머지 4권을 보고 있으려니 갚아야 할 빚이 쌓여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이 모이든 모이지 않든, 독서 모임을 잘 진행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책 밑면에 찍힌 '은행나무증정도서'라는 도장을 볼 때마다 떠올랐다.


일단 포스터를 만들어 모객을 시작하고 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방지기가 제대로 책을 읽지 않은 상태로 독서 모임을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좀 더 제대로 읽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화자가 교차되는 형태의 소설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고, 이 정도 분량의 장편을 적게 읽어본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독서는 남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해왔다고 생각해왔는데 읽기가 힘들었다. 겨우겨우 한 번을 다 읽고 나서 두 번째 읽고, 독서 모임에 참여한 세 명의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비로소 이 소설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독서 모임이 필요한 것이다.)

독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도 이 소설이 읽기 힘들었다고 했고,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게 묘사가 많아서 읽기 힘들었다고도 했고, 치밀한 감정 묘사가 많아서 읽기가 힘들었다고도 했다. 내 경우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존과 마이클이 화자가 되었을 때 읽기가 힘들었다. 우울증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했던 탓이었을 수도 있고, 이런 화자가 낯선 탓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애덤 해즐릿은 '낯설게 하기'로서의 소설 쓰기에는 성공한 셈이었다.

읽기가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낯선 화자에게 지나치게 몰입이 되는 탓도 있었다. 우울증을 가진 화자에게 몰입하다 보니 독자인 나도 더러 우울해져서 더 이상 책을 읽기가 힘들어질 때도 있었다. 화자가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읽고 있으면 저절로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도 애덤 해즐릿이 괜찮은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울한 화자가 독자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읽기 힘들었던 이유는 지독하게 아픈 가족애 때문이다. 돌봄을 행하는 쪽(마거릿, 실리아, 앨릭)과 돌봄을 받는 쪽(존, 마이클) 모두,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극진하지만 동일 선상에서 결코 만나기 힘든 구조 때문에 그들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돌봄이라는 영역에 한정하고 보면 그들의 고통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라서, 뚜렷한 해결책이 없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들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물 없이 고구마를 꾸역꾸역 씹고 있는 기분이 절로 든다. 아마 그 고통의 영역이 나와 유리된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한다면 한 발짝 떨어져서, 여유 있게 물을 삼키며 고구마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족의 모습은 이름만 바꾸면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내가 없다면>을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면 가슴이 아려오는 이중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된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인 내(존, 마이클)가 사라지면 어떨까를 생각하는 것 한 가지와, 존의 머릿속의 또 다른 나인 괴물과 마이클의 머릿속의 또 다른 내가 없다면, 이 가족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미 한 가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덤 해즐릿이 말하고 싶은 것은 엄마인 마거릿이 존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말하는 이 마지막 문장에 모두 들어있다.

"그날, 그리고 그날 이후로 이어진 그 모든 날들을 나는 슬픔이 아닌 경이로운 마음으로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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