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진 리스
이 책을 일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우연과 필연의 결합이랄까. 읽고 싶은 책을 고를 때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보통 나는 책에 관한 소개를 간략하게 읽고 나서 끌리는 책을 사서 읽는다. 그런데 여러 책을 한 번에 구입하다 보면 어떤 맥락으로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심할 때는 구입한 책 자체가 낯설게 보일 때도 있다.
진 리스의 <어둠 속의 항해>가 그런 경우였다. 분명히 읽고 싶어서 구입을 한 것 같은데, 읽고 싶었던 이유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읽고 싶었던 책이었으니 소개를 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렸는데, 어떤 분이 댓글에 이 책이 정말 매력적인 책인데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써주셨다. 그 댓글 덕분에 이 책은 읽어야 할 이유가 비로소 생기게 되었다.
사고 나서 작가 소개와 발간사 정도만 훑어보았는데, 부리나케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 매력이 무엇인지 꼭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분명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이 책은 확실히 매력적인 책이라고. 엄밀히 말해서, 이 책과 작가 중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를 만큼 이 책은 작가 그 자체이고, 작가가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모습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는데, 이 책은 작가의 생애는 물론 외모까지 정말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어둠 속의 항해>가 작가가 꼽은 최고의 작품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자서전적인 소설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품 자체가 그리 흥미롭지 않다면 작가에게까지 관심이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둠 속의 항해>는 이제 막 어른이 되어가는, 젊고 불안하고 사랑에 눈뜨기 시작하는 어린 여자의 심리를 아주 섬세하게 잘 나타냈기 때문에 작품을 읽고 나서 그 뒤에 이 주인공 혹은 작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게 되었다.
가난한 현실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젊은 여자가 살아남으려면 할 수 있는 선택들이 예나 지금이나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젊고 약하고 불안하고 흔들리기 쉬운 그녀의 눈앞에 놓인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쉽게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 때문에 삶의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고통을 받기도 한다. 통속 소설에서도 나올 법한 내용이지만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그런 외적 요건이 아니라, 그런 외적 요건에 반응하는 그녀의 내면이 섬세하게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미숙하고 어리석을지라도, 그것이 바로 젊음이고 그 젊음의 미숙함과 불안과 열띤 마음의 순간들을 소설은 잘 포착해내고 있다.
누군가에겐 그녀의 내면이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지나간 과거가 되었을 수도 있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세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둠 속의 항해>의 주인공은 그 모든 것이 될 수도 있고, 익숙한 듯 낯선 세계를 환기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일치하진 않더라도 어딘가 불안하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는 그녀의 젊음과 미숙함이 나의 현재 혹은 과거의 어느 순간을 환기하고, 영국이라는 배경만 제외한다면 어느 젊음이라고 해도 무방한 그녀의 모습 속에서 나의 어떤 한 때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