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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Sep 27. 202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전통의 매혹과 고루함 사이에서

   과거는 때로 매혹적일 수 있다. 지나간 시간에 의미가 쌓여서 이루어진 과거는 전통이 되기도 하고 나아가 우리 삶의 기준이 되기도 해서, 새로운 세대에게는 가닿지 못했던 매혹적인 세계가 되기도 한다. 동시에 그것은 고리타분함과 고루함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귀족들이 가진 예절과 우아함 안에 동시에 숨어있는 그들의 자기중심적인 면과 오만함은 과거의 이중성과 상통한다. 예절과 우아함이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자기 중심성과 오만함은 그들의 고루함을 보여준다. 


   과거가 매혹적일 수 있다는 것은 현재와 대비되면서 얼마든지 부정될 수 있고 갱신될 수 있는 의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프루스트가 예술에 매혹되는 이유와도 통한다. 기존 예술의 전통과 함께 그것들을 뚫고 솟아 나오는 새로운 예술에 끊임없이 매혹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귀족에게도 그토록 매혹되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되는데, 마르셀이 할머니를 지극히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보여주는 태도가 낯설다. 마르셀은 할머니를 걱정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타인의 눈을 의식한다. 마르셀은 거동조차 어려운 할머니가 르그랑댕의 인사에 제대로 답을 했는지를 챙기고, 할머니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어머니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화자가 타인의 감정에 섬세하고 반응하고 남의 입장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해 볼 때, 죽음을 목전에 둔 할머니의 고통이 보다 본질에 가까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주변인들을 의식하는 것은 마르셀 역시 당시 귀족들의 태도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귀족에게 매혹된 작가가 마르셀에게 이런 태도를 취하게 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게르망트 공작이 보여주는 것이 제대로 된 귀족의 모습이긴 하지만 말이다. “게르망트 공작이 이렇게 말한 것은 교육을 잘못 받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하지만 그는 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이 점에서는 대다수의 의사나 장의사의 일꾼들과도 비슷했다.”(50)


   할머니의 임종 앞에서 보여주는 게르망트 공작의 태도는 이 책의 후반부와 연결되면서 내용이 완결되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마르셀의 어머니가 슬픔에 사로잡혀서 게르망트 공작의 인사에 사촌인 오스몽 후작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이 참석할 만찬과 이어지는 대연회와 야식 모임, 가장무도회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사촌의 목숨을 붙들어두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도 게르망트 공작에 대해 얼떨떨하게 파악하고 있던 우리는 스완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 보여주는 태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공작은 죽어 가는 사람에게 아내와 자기 몸의 불편함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것만이 그의 관심을 끌었고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486)


   마르셀이 품고 있던 귀족 세계에 대한 동경과 상상이 실제를 경험하고 나서 허물어지는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어쩌면 마르셀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남은 시간보다 지난 시간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소중하게 품고 있던 과거의 어떤 가치가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의 과거는 아무래도 켜켜이 쌓인 아름다운 기억들에 가까운 의미로서의 과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르셀에게 죽음은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할머니의 죽음은 마르셀이 통과해야만 하는 시간, 그리고 지난 세대의 소멸과 그 자연스러움에 관한 상징이라도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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