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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Oct 07. 2023

<올리버 트위스트>

전형적인 것들이 주는 쾌감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의 소설을 읽으면 그 시절의 독자를 상상한다. 지금처럼 주의력을 빼앗길 대상이 많지 않았던 시대였을 테고, 시간의 흐름도 달랐을 것이다. 삶의 모습도 많이 달랐겠지만 막상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비참한 삶이든 윤택한 삶이든 그런 차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읽을 수 있는 19세기 영국의 고아원과 구빈원, 좀도둑들의 모습과 런던의 생활환경이 지금 우리에게는 많이 낯설지만 그때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현실을 가져다가 올리버라는 인물을 만들고 이런 소설을 쓰던 디킨스를 또한 상상한다. 


   디킨스는 분명히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커다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고 작은 불만을 누르면서 삶을 적당히 받아들이고 살지만 작가들은 그 안에서 어떤 본질적인 문제들을 찾아내니까 말이다. 자신이 살고 있던 현실의 가장 큰 문제들을 포착해서 소설을 써 내려갈 때, 디킨스는 아마도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절박하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 같다. 


   현실이 너무 척박하고 비참할수록 우리는 그걸 있는 그대로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희망과 판타지를 보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픽션 안에서라도 권선징악의 쾌감을 얻고 싶다. 사실 이 소설 안에서 가장 큰 악은 사회구조적인 모순이었겠지만, 그것들을 개선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연구자들의 몫이므로 디킨스는 범블 씨를 벌한다. 그리고 서민들 눈에는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큰 도둑들은 보이지 않으므로, 페이긴이나 사익스와 같은 좀도둑들을 벌한다. 눈에 보이는 그런 악이라도 벌하고 나면 천성적으로 선한 인간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본성이 선한 올리버는 반드시 행복해져야 하는 것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너무 먹고살기 힘들어서 도덕적 가치가 무너진 사회에서 디킨스와 같은 작가라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선명한 주제의식으로 도덕관을 세우고 독자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의 몫을 살아낸 독자들은, 별다른 유희가 기다리지 않은 나머지 시간을 신문에 연재된 이 재미난 소설로 기쁘게 채워야 했을 것이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짧은 장이지만, 앞장과 뒤에 따라올 내용을 이어줄 중요한 열쇠가 되는 장”이라고 붙이는 소제목의 재미는 아마도 신문에 연재된 소설이 아니었다면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시선으로 보면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평면적으로 보이는 인물들과 교훈이 가득한 작가의 목소리는 당시 독자들에게는 걸림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는 당시의 독자들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상상력이 아무 때나 시대를 넘나들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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