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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an 27. 2024

<작별하지 않는다>

상징과 은유로 녹여낸 현대사의 아픔

   작별은 대상과의 갈라섬, 분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감정에 가까운 단어다. 분명히 겪고 싶지 않을 그 단어를 소설의 제목에 올려두고, 뒤에 ‘하지 않는다’는 부정 어미를 붙여두었다. 제목으로 짐작해 보면 고통스러운 감정이 유발되는 그 상황을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독자는 화자의 사적인 작별과 지독한 편두통, 위경련, 썼다 지웠다 하는 유서와 만나게 된다. 


   화자인 경하가 사적인 작별을 하게 된 계기는 사 년 전 썼던 소설의 영향 때문이다. 너무 지독하고 끔찍해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던 역사적 사건에 관한 그 소설에 관한 이야기는, 이 소설이 소설과 현실을 넘나들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소설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런 방식의 소설은 자칫하면 작가와 화자를 동일인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런 것을 염려하지 않는 듯하다. 이 소설에서 담고 싶은 이야기와 메시지가 그런 오해를 뛰어넘고도 남을 만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무엇을 쓰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어떻게 쓰는 것인가의 문제인데,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는 소설임에도 우리는 마치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을 보는 것과 같은 생생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주요 인물인 경하와 인선의 관계가 친밀할수록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선의 가족사 또한 가깝게 느껴진다. 우린 이미 경하에게 감정이입을 한 상태에서 인선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경하는 본인은 죽고 싶더라도 인선의 앵무새와 인선만큼은 살리고 싶고, 그 절박함은 자신의 절망만큼이나 깊을 것이다. 우리는 경하의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같이 편두통에 시달리고 조바심치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인선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미처 살리지 못한 앵무새가 죽어있다면 잘 묻어줘야 하고 인선이 품고 있는 사연이 있다면 잘 들어줘야 한다. 인선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어쩌면 지금 경하를 살게 만들고 있는 이유일 수도 있다. 


   폭설과 단전으로 고립된 인선의 집에서 경하가 조우하는 건, 인선의 영혼과 그 영혼이 구성되기까지의 시간이다. 과거의 시간들은 인선의 가족사를 말해주고,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말해주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몰랐던 사실, 경하 혹은 작가가 몰랐던 사실, 인선이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모두 포함한다. 그 앞에서 두 영혼은 마치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 참혹함에 하얗게 질려서. 


   하지만 인선의 영혼이 하고 있는 이 말은,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197) 인선 자신에게도 향한 말이지만 경하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인선이 두 손가락이 잘릴 정도로 사력을 다해 만들고 있던 검은 나무 기둥들은 죽은 사람들의 묘비다, 혹은 혼이다. 그 위로 내리는 것은 그 모든 역사를 씻어 내리는 비가 아니라 눈이다. 소복이 쌓여 덮이는 눈이다. 죽은 이들을 그대로 기억하며 덮어주는 하얀 천과 같은 눈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상징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별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작별’의 대상은 이미 떠나간 사람 혹은 묻힌 역사를 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들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떠나간 사람과 묻혀있는 역사를 지금 다시 불러온다는 의미다.
  인선과 경하의 우정과 사랑은 성냥개비로 불꽃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아무리 작아도 불빛이며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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